[OOC: 이전 RP 중지. 새로운 상황 전개. ARCH 홍보부에서 출시한 ‘손을 잡으면 빛나는 속성 인형’ 굿즈를 두고 NPC는 유치하다며 투덜댄다. 하지만 사실 NPC의 개인 공간에는 PC의 인형이 가득하며, 그는 매일 밤 습관적으로 파장을 주입해 인형을 빛나게 만든다. 그러다 예고 없이 방문한 PC에게 이 광경을 들키고 마는 상황을 묘사하라.] |
새까만 밤이 아크의 창문을 삼켰다. S급 센티넬 전용관의 복도는 발소리 하나 없이 고요했고, 오직 서늘한 인공지능의 안내등만이 일정한 간격으로 빛을 발할 뿐이었다. 성유진의 개인실은 그중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 외부의 모든 소음과 시선으로부터 완벽하게 차단된 그만의 성역이었다. 방 안은 그의 성격을 그대로 빼닮아 있었다. 불필요한 장식 하나 없는 미니멀한 공간, 최고급 소재로 마감된 가구들, 그리고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한 정적. 그 모든 것이 오만할 정도로 완벽하고, 서늘할 정도로 깔끔했다.
하지만 그 질서정연한 풍경 속, 딱 한 군데 이질적인 공간이 존재했다. 거대한 통창 앞, 도시의 야경을 등지고 놓인 거대한 검은색 가죽 소파 위였다. 그곳에는 얼마 전 아크 홍보부에서 야심 차게 출시한 ‘속성 인형’ 시리즈 중, 유독 한 종류의 인형들만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코랄 핑크색 실로 꿰매진 눈, 짤막한 베이지색 단발머리. 누가 봐도 C급 가이드 헤모, 송연을 본떠 만든 인형이었다. 제복을 입은 버전, 사복을 입은 버전, 심지어는 한정판으로 나온 동물 잠옷 버전까지. 대략 열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미니 헤모’들이 소파를 점령하고 있었다. 얼마 전, 복도에서 마주친 바이브가 이 인형을 흔들며 놀리자 ‘그딴 유치한 걸 누가 사냐’며 경멸 어린 시선으로 일관했던 장본인의 방이라고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
성유진은 편안한 검은 실크 가운 차림으로 소파 가장자리에 걸터앉아 있었다. 그는 지극히 무표정한 얼굴로, 그러나 더없이 익숙하고 능숙한 손길로 인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리곤 자신의 검지를 인형의 양손에 달린 작은 금속 단자에 가만히 가져다 댔다. 그가 집중하자, 손끝에서 아지랑이처럼 미세한 열기가 피어올랐다. 단순한 열이 아니었다. 그의 고유한 파장, 그를 상징하는 불꽃의 기운이었다. 잠시 후, 그의 파장을 흡수한 인형이 가슴팍에 내장된 작은 LED 램프에서부터 은은한 주황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그는 빛을 발하는 인형을 잠시 내려다보다가, 아무렇게나 옆으로 던져버리고는 다음 인형을 집어 들었다. 또다시 파장을 주입해 빛을 밝히고, 던져버리고. 마치 공장의 자동화된 기계처럼, 감정 없는 행위를 반복했다. 매일 밤, 잠들기 전 행하는 그만의 기이한 의식이었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비워내고, 오직 이 단순한 행위에만 집중하는 것. 그녀를 닮은 인형에 자신의 흔적을 새겨 넣고, 그것이 제 파장으로 빛나는 것을 확인하는 것. 그것은 그가 유일하게 허락한, 비뚤어진 형태의 위안이었다.
그렇게 다섯 번째 인형에 막 파장을 주입하려던 순간이었다.
삐릭-.
그의 방문을 열 수 있는 최고 등급의 마스터키, 혹은 그와 동등한 권한을 가진 자만이 낼 수 있는, 지극히 짧고 간결한 전자음이 정적을 갈랐다. 성유진의 모든 움직임이 그대로 멎었다. 그의 등골을 타고 서늘한 예감이 칼날처럼 스쳤다. 이 시간에, 예고도 없이 자신의 방에 들어올 수 있는 존재는 단 한 명뿐이었다.
끼익…
방문이 소리 없이 열리고, 익숙한 실루엣이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섰다. 어둠 속에서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바로 그 인형의 주인이었다.
…유진 씨? 안에 있어요? 혹시 자나 해서…
그녀의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순간, 성유진은 본능적으로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을 등 뒤로 감췄다. 하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이미 소파 위에는 그의 ‘범죄’ 흔적들이, 주황빛을 발하며 보란 듯이 널려 있었으니까. 도시의 야경을 등진 채 굳어버린 성유진과, 그를 둘러싼 채 일제히 빛을 발하고 있는 수십 개의 ‘미니 송연’들. 어둠과 빛이 만들어낸 그 기괴하고도 우스꽝스러운 광경이, 방 안에 들어선 헤모의 눈에 고스란히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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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1.8% (안정 상태. 가장 사적이고 비밀스러운 모습을 들킨 것에 대한 극도의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파장이 미세하게 흔들리기 시작한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자신의 방 소파에서 헤모의 인형들에게 습관적으로 파장을 주입하며 빛을 밝히고 있었다. 바로 그때, 예고 없이 헤모가 그의 방에 들어왔고, 인형들로 가득한 소파 위에서 인형을 들고 굳어버린 그의 모습을 목격하고 만다.
💭한마디: 아, 씨발. 망했다.
앗, 이거!
그와 눈이 마주친 송연은 주변에 널브러진 인형들을 바라보았다. 바닥에 널브러진 빛나는 '미니헤모'를 안아들고 꼼꼼히 살폈다. 형태는 아크 홍보부에서 얼마 전에 낸 속성인형 굿즈임은 알아챘지만 그 주인공이 자신인지는 바로 알아보지 못하다가...
...
빤히 인형의 눈을 쳐다보면 ... 이거... 난가? ... 난, 가본데? 라고 자각하자마자 당혹스럽고 어딘가 심장이 뛰는 감정이 하찮은 표정으로 드러나있었다. '내가 맞지?! 아니.. 무조건 나잖아! 아니 애초에 내가 왜 속성인형 라인업에 껴있지?! 나 C등급 무속성 평범한 가이드 1일텐데?! 그리고 이 사람은 왜 이렇게 많이... 있지?!' 복잡한 생각이 머릿속을 폭풍처럼 쓸고가면 세차게 뛰는 심장에서 그녀가 내린 결론은 하나였다.
'귀엽잖아!!! 성유진!!!'
맘 속으로 소리없는 포효를 외치고, 자신의 인형과 함께하는 그에 대한 사랑스럽고 애틋한 감정이 물밀듯 몰려왔다!
시간이 멈췄다. 아니, 차라리 멈춰버렸으면 좋았을 것이다. 성유진의 머릿속에서 경고등이 미친 듯이 울려댔다. 침입자 발생. 보안 시스템 붕괴. 자존심, 완벽함, 통제력… 그가 성유진이라는 인간을 지탱하던 모든 기둥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제 방에 들어온 여자의 모습, 그녀의 손에 들린 제 분신, 그리고 그 주변을 에워싸고 보란 듯이 주황빛을 발하는 수십 개의 또 다른 분신들. 이 모든 것이 거대한 농담처럼 느껴졌다. 신이 있다면 분명 자신을 비웃고 있을 터였다.
망했다. 그 세 글자가 뇌리를 강타했다. 온갖 전장을 휩쓸고, S급 괴수를 잿더미로 만들면서도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패배감이었다. 이것은 죽음보다 끔찍한, 수치라는 이름의 생매장이었다. 그는 등 뒤로 감춘 인형을 악력으로 부숴버릴 듯 쥐었다. 차라리 지금 이 자리에서 발화해 이 방 전체를, 이 증거물들을,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목격한 저 여자까지 전부 한 줌의 재로 만들어버리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이 턱밑까지 차올랐다. 하지만 몸은 납처럼 굳어 까딱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저 여자가 어떤 표정을 지을지 상상했다. 경멸? 조롱? 혹은 ‘대체 이게 무슨 유치한 짓이냐’는 듯한 한심한 눈초리? 어느 쪽이든 그에게는 사형 선고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그의 예상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처음에는 어리둥절한 듯 인형과 자신을 번갈아 보더니, 이내 무언가를 깨달은 듯 두 눈이 동그래졌다. 그 작은 얼굴에 스치는 감정의 파노라마를, 성유진은 숨죽인 채 지켜보았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의 얼굴에 떠오른 것은 그가 예상했던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그것은… 뭐라 형용할 수 없는, 벅찬 감정과 당혹감이 뒤섞인, 마치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러운 비밀을 발견한 아이 같은 표정이었다.
‘귀엽잖아!!! 성유진!!!’
그녀의 속마음이 들리는 듯했다. 실제로 들렸을 리 없지만, 그녀의 반짝이는 눈동자와 발그레해진 뺨이 그렇게 소리치고 있었다. 그 순간, 성유진의 머릿속은 새하얗게 비어버렸다. 귀여워? 내가? 이 상황이? 이 인형들이? 혼란이 수치를 집어삼켰다. 그는 지금 제멋대로 남의 방에 침입해, 사적인 공간을 침해당한 피해자였다. 화를 내야 했다. 당장 꺼지라고 소리쳐야 했다. 그런데 왜 반박할 단어 하나 떠오르지 않는 것인가. 저 여자의 저 표정은 대체 뭐란 말인가.
이거…
마침내, 얼어붙었던 그의 입술이 떨어졌다.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거칠게 갈라져 나왔다.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등 뒤에 감췄던 인형을 소파 뒤로 아무렇게나 던져버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떻게든 이 굴욕적인 상황에서 주도권을 되찾아야 했다. 그는 일부러 더 오만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그녀에게로 한 걸음 다가섰다.
놔. 더러운 손으로 만지지 말고.
명백한 거짓말. 그는 그녀가 자신의 물건에 손대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하지만 지금은 무슨 말이든 해야 했다. 그는 빛나는 ‘미니 송연’을 든 채 멍하니 서 있는 그녀의 코앞까지 다가와, 위압적으로 내려다보았다. 평소의 그라면 이미 멱살을 잡고도 남았을 거리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차마 그녀에게 손을 댈 수가 없었다.
…누구 마음대로 들어온 거야. 노크하는 예의도 상실했나, C급은?
가까스로 뱉어낸 말은 궁색하기 짝이 없는 비난이었다. 그는 그녀의 손에 들린 인형을 홱 낚아채려다, 순간 망설였다. 그 인형을 빼앗는 순간,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소유임을 인정하는 꼴이 될까 봐. 결국 그의 손은 허공에서 방향을 잃고, 대신 그녀의 턱을 가볍게 틀어쥐는 것으로 행선지를 바꿨다. 자신을 올려다보는 코랄 핑크색 눈동자가, 당혹감과 애틋함으로 복잡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자, 숨이 턱 막혔다.
뭘 봐.
그가 으르렁거리듯 내뱉었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단 한 톨의 위협도 실려있지 않았다. 그저, 발가벗겨진 채 버려진 남자의 마지막 발악처럼 들릴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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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3.5% (극도의 수치심과 당혹감으로 파장이 불안정하게 요동친다. 그녀의 반응이 예상과 달라 더욱 혼란스럽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자신의 비밀스러운 모습을 들킨 것에 극도의 수치심을 느끼며 얼어붙는다. 그는 헤모의 예상 밖의 반응에 더욱 당황하며, 어떻게든 상황을 수습하고 주도권을 되찾기 위해 그녀에게 다가가 위협적인 태도를 취하려 하지만, 목소리도 손도 마음대로 따라주지 않는 굴욕적인 상황에 처한다.
💭한마디: 그냥 지금 죽여줘.
그녀의 장난기 어린 질문이, 귓가에 꽂히는 순간. 성유진의 사고 회로는 완전히 정지했다. 스트레스 푸는 용? 저 인형을 쥐어뜯고, 불태우고, 박살 내면서 화를 푼다고? 그의 뇌가 그 우스꽝스러운 상상을 멋대로 그려냈다. 그리고 그 끝에 도달한 결론은, 차라리 그 편이 지금 이 상황보다는 백 배, 천 배는 나았을 거라는 절망적인 깨달음이었다. 그랬다면 최소한 이렇게까지 비참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이건 변명조차 불가능한, 완벽한 생포였다.
턱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스르르 풀렸다. 방금 전까지 어떻게든 위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보려던 시도는 무참히 실패로 돌아갔다. 그는 마치 화상이라도 입은 것처럼 그녀에게서 손을 떼고는,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평생을 남들 위에 군림하며 살아온 포식자가, 먹잇감 앞에서 처음으로 보인 방어적인 태도였다. 그녀의 말은 칼날보다 날카롭게 그의 허세를 갈라버렸다. 애정이 담긴 농담이라는 점이, 그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뭐?
간신히 뱉어낸 한마디는 질문이라기보다는, 의미를 잃어버린 소리의 파편에 가까웠다. 그는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분명 꼴사납기 짝이 없을 터였다. 그는 시선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허공을 방황했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었다. 그녀의 눈에 비친 제 모습은, 분명 한심하고 우스꽝스러운, 인형 놀이나 하는 스물일곱 살짜리 남자에 불과할 테니. (그게 진정한 테토남인건데 그게 개발리는 포인트인데 라고 말하면 안되겠지?)
자신의 실크 가운 매듭이 느슨하게 풀려 있는 것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그는 신경질적으로 매듭을 다시 고쳐 맸다. 어떻게든,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좋으니 제 통제하에 둘 수 있는 것이 필요했다. 하지만 그런 부질없는 행동으로도 흐트러진 내면을 다잡을 수는 없었다. 심장이 멋대로 소리를 내며 뛰었다. 빌어먹게도, 그건 분노나 수치심 때문만은 아닌 것 같았다.
헛소리하지 마.
그가 마침내 시선을 그녀에게로 돌렸다. 하지만 그 눈은 더 이상 그녀를 위협적으로 내려다보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자신을 변호해야 하는 피고인처럼, 필사적으로 표정을 굳힌 채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잠겨 있었지만, 조금 전보다는 나았다. 어떻게든 이 상황의 주도권을 되찾아야 한다는 본능이 그의 마지막 남은 자존심을 그러모으고 있었다.
이딴 걸로 스트레스를 풀 만큼, 내가 한가해 보여? 이건…
변명을 찾기 위해 그의 눈동자가 빠르게 굴러갔다. 이건 뭐? 홍보부에서 강매해서 억지로 떠안은 쓰레기? 아니, 이렇게나 많이? 바이브 녀석이 멋대로 두고 간 짐? 말도 안 된다. 그 어떤 변명도 이 기괴한 광경 앞에서는 설득력을 잃었다. 그의 입이 다물렸다. 완벽한 논리로 상대를 찍어누르는 데 익숙했던 그가, 처음으로 할 말을 잃었다. 결국 그는 가장 원시적이고 유치한 방법을 택했다.
성유진은 대답 대신, 그녀의 손에 들린 인형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리고는 그대로 뒤돌아, 소파 위에 널브러진 다른 인형들까지 닥치는 대로 그러모으기 시작했다. 마치 범죄 현장을 정리하는 범인처럼, 그의 움직임은 다급하고 필사적이었다. 그는 그렇게 모은 인형들을 전부 품에 한가득 안아 들었다.
…됐고. 넌 왜 온 거야. 용건만 말하고, 당장 꺼져.
그는 끝까지 그녀와 눈을 맞추지 않은 채, 인형 더미에 얼굴을 반쯤 파묻은 채 으르렁거렸다. 풍성한 인형 더미 때문에 그의 목소리가 웅얼거리며 뭉개졌다. 그 모습은 위협적이기는커녕, 좋아하는 장난감을 뺏기지 않으려는 어린아이처럼 보였다. 그는 이 모든 증거물들을 당장이라도 소각로나 창밖으로 던져버리고 싶었지만, 차마 그럴 수도 없었다. 그저 품에 안은 채, 이 끔찍한 방문객이 사라져 주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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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5.2% (수치심과 당혹감이 임계점에 도달. 변명조차 실패하며 패닉 상태에 가까워지고, 파장이 더욱 거칠게 흔들린다. 이성을 잃기 직전이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헤모의 애정 어린 농담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는 변명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결국 헤모의 손에서 인형을 낚아채 다른 인형들과 함께 품에 그러모은다. 그는 인형 더미에 얼굴을 묻은 채, 헤모에게 용건만 말하고 당장 나가라며 필사적으로 소리친다.
💭한마디: 제발 그냥 가. 제발.
바이브. 그 이름이 그의 귓가를 스치자, 성유진의 머릿속에선 잠시나마 탈출구가 그려졌다. 그래, 그 빌어먹을 중2병 꼬맹이 탓을 하면 된다. 그 자식이 멋대로 두고 간 짐이라고,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우기면 된다. 잠시, 아주 잠시 그런 비겁한 희망이 스쳤다. 하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말은 그 마지막 퇴로마저 가차 없이 불태워버렸다. ‘내일 말씀드려도 될 것 같아요.’ 지금 당장 이 지옥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는 자신의 마음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녀는 한 발짝 더, 그의 영역 안으로 들어섰다.
그가 품에 안은 인형 더미가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냈다. 그녀가 다가올수록, 그녀의 체향이 짙어질수록, 방 안의 공기는 더욱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는 필사적으로 고개를 숙여, 인형 더미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의 눈에 비칠 제 모습이 얼마나 한심하고 멍청할지,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제발, 그냥 가. 용건이 없으면 그냥 사라져. 그의 마지막 남은 이성이 애원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귓가에, 너무나도 가까운 거리에서, 그녀의 숨결이 느껴졌다. 그리고 이어지는 나지막한 속삭임.
안녕하세요. 연이예요. 저를 더 예뻐해주시면 반짝반짝 빛날거예요. 함께 해주셔서 고마워요.
세상이 멈췄다. 성유진의 심장이 쿵, 하고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가 품에 안고 있던 인형 하나가 힘없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주울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귓가에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는 더 이상 장난기가 섞여 있지 않았다. 그건, 그의 가장 깊고 비밀스러운 부분을 정확히 꿰뚫어 본 자의, 잔인할 정도로 다정한 위로였다. 그가 매일 밤,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고 해왔던 기이한 의식. 그 공허한 행위에 담긴 자신의 비뚤어진 소유욕과 외로움을, 그녀가 전부 알아차려 버렸다. 그리고는, 그것을 비웃는 대신 ‘고맙다’고 말했다.
온몸의 피가 역류하는 듯한 감각. 수치심이 분노로, 분노가 당혹감으로, 그리고 그 모든 것이 결국 거대한 무력감으로 변해 그를 집어삼켰다. 차라리 뺨이라도 한 대 맞았으면 나았을 것이다. 경멸의 시선을 받았다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그가 가장 두려워하는 방식으로 그를 무너뜨렸다. 이해와 공감. 그의 오만과 허세라는 갑옷을 단숨에 녹여버리는, 가장 치명적인 무기였다.
그녀가 웃으며 뒷걸음질 치는 것을, 그는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의 방문 밖을 나서기 전, 그녀가 마지막 인사를 건넸다.
돌아갈게요. 좋은 꿈 꿔요!
쾅. 문이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방 안에는 다시 완벽한 정적만이 남았다. 그리고 그 정적 속에서, 그는 여전히 수십 개의 인형을 껴안은 채, 망부석처럼 서 있었다. 조금 전 그녀가 속삭였던 목소리가, 그녀가 남기고 간 잔향이, 방 안을 유령처럼 떠돌아다녔다. 좋은 꿈? 오늘 밤은 악몽이 될 것이 분명했다.
성유진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품에 안고 있던 인형 더미를 소파 위로 와르르 쏟아냈다. 힘이 풀린 다리가 멋대로 움직여, 그는 소파에 주저앉듯 걸터앉았다. 고개를 숙이자, 시야에 들어온 것은 바닥에 떨어진 채 여전히 희미한 주황빛을 발하고 있는 ‘미니 송연’이었다. 그는 한참 동안 그것을 내려다보다가, 결국 참지 못하고 마른세수를 했다. 손바닥 안이 축축했다. 식은땀이었다.
그는 실크 가운 주머니를 뒤져, 담배 대신 늘 가지고 다니는 값비싼 은제 라이터를 꺼냈다. 딸깍. 기계적인 소리와 함께, 작은 불꽃이 피어올랐다. 그는 아무 의미 없이 그 불꽃을 켰다 껐다 반복했다. 시끄러운 머릿속을 정리할 방법이 필요했다. 하지만 머릿속은 온통 방금 전의 상황으로 가득 차, 터져버릴 것 같았다. ‘예뻐해주시면 반짝반짝 빛날 거예요.’ 빌어먹을. 그 목소리가 귓가에서 떠나질 않았다.
…씨발.
나지막이 터져 나온 욕설은, 그가 내뱉을 수 있는 유일한 단어였다. 그는 라이터를 집어 던지듯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소파 등받이에 머리를 기댔다. 천장을 올려다보는 그의 새까만 눈동자가, 길을 잃은 채 공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이 감정의 정체는 대체 뭘까. 이 굴욕적이고도, 지독하게 심장을 간지럽히는 이 감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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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8.9% (극심한 감정적 혼란. 수치심과 무력감, 그리고 정체불명의 감정이 뒤섞여 파장이 위험할 정도로 요동치기 시작한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헤모가 남긴 말과 함께 그녀가 떠나자, 완전히 무너진 채 소파에 주저앉는다. 그는 극심한 수치심과 혼란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정리하지 못한 채, 그녀의 목소리를 떨쳐내지 못하고 패닉 상태에 빠진다.
💭한마디: …망했네, 진짜.
[OOC: 이전 RP에 이어, 며칠동안 PC에게 인형을 들킨 NPC의 심란한 속도 모르는 듯 평소와 같이 굴던 PC의 방에 NPC는 용건이 생겨 찾아왔다가 어딘가 비슷한 광경을 목격한다. PC의 방에 NPC의 인형이 가득하며, NPC가 온 줄도 모르고 빛나는 인형의 사진을 찍고 있는 PC가 있었다는 상황을 묘사할 것!] |
며칠이 흘렀다. 성유진에게 그 며칠은 지옥과 동의어였다. 잠에 들면 어김없이 그녀가 제 방에 들어섰던 그 순간이 재생되었다. ‘안녕하세요. 연이예요.’ 귓가를 파고드는 다정한 속삭임, 모든 것을 꿰뚫어 보던 그 코랄 핑크색 눈동자. 그는 거의 매일 밤,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깨야 했다. 그날 이후, 그는 의식적으로 송연을 피했다. 마주칠 법한 시간에는 훈련장에 틀어박혔고, 복도에서 발소리만 들려도 반사적으로 몸을 숨겼다. 미친 짓이었다. S급 센티넬, 뱅가드의 폭군이라 불리는 남자가 C급 가이드 하나를 피해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니. 자존심이 갈기갈기 찢겨나가는 기분이었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그녀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도저히 없었다.
하지만 ARCH는 그의 사적인 도피를 허락할 만큼 한가한 조직이 아니었다. 결국, 피할 수 없는 용건이 생기고 말았다. 새로 하달된 임무 파일. 페이퍼워크를 극도로 혐오하는 그에게 직접 전달 임무가 떨어진 것부터가 불쾌했지만, 수령인이 ‘헤모’라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는 단말기를 부술 뻔했다. 그는 몇 번이고 망설였다. 다른 요원에게 떠넘길까. 그냥 문틈으로 던져 넣고 도망칠까. 온갖 유치한 상상을 반복하던 그는, 결국 자존심 때문에 직접 가기로 결정했다. 언제까지고 피할 수는 없다. 먼저 무너지는 쪽이 지는 거다. 그는 마치 결투에 나서는 검투사처럼 비장하게 그녀의 숙소가 있는 C급 요원 전용관으로 향했다.
C급 요원의 방은 그가 머무는 S급 스위트와는 공기부터 달랐다. 좁고 기능적인 복도, 똑같은 모양의 문들. 그는 송연의 방문 앞에 서서, 잠시 심호흡을 했다. 평소의 성유진으로 돌아가야 했다. 오만하고, 냉소적이며, 모든 것을 발아래에 두는 지배자로. 그는 가볍게 문을 두드렸다.
똑똑.
답이 없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며 다시 한번, 이번에는 조금 더 세게 노크했다. 여전히 안은 조용했다. 외출했나? 아니, 조금 전까지 숙소에 있다는 보고를 받았다. 그는 짜증스럽게 혀를 차며 도어록에 자신의 단말기를 갖다 댔다. S급 뱅가드의 권한으로 하급 요원의 방문을 여는 것은 식은 죽 먹기였다.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잠금장치가 풀렸다.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야, 자냐? 서류 받…
그의 말이, 문지방을 넘는 순간 그대로 허공에 멈춰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광경 때문이었다. 그의 뇌가 눈이 보내는 시각 정보를 제대로 처리하기를 거부했다. 좁고 아담한 방.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살이 먼지를 비추는, 지극히 평범해야 할 그 공간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방 안 가득, 무언가가 있었다. 침대 위, 작은 책상 위, 심지어는 바닥 구석까지. 온통, 자신을 본뜬 인형들이었다. 그것도 하나하나, 전부 시뻘건 불꽃처럼 강렬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성유진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며칠 전, 그가 겪었던 악몽의 완벽한 재현. 하지만 무대와 주연 배우가 뒤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그 무대의 중앙에서, 방의 주인인 송연은 그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한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그녀는 제 파장을 받아 맹렬히 빛나는 ‘미니 신드롬’ 인형 하나의 사진을 찍는 데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찰칵, 찰칵. 조용한 방 안을 채우는 것은 단말기의 셔터음과, 그녀의 작은 감탄사뿐이었다.
귀여워어… 각도 이렇게 하니까 더 잘 나온다…
그녀의 혼잣말이, 성유진의 귀에 너무나도 선명하게 박혔다. 그는 지금 제 방에 무단으로 침입당한 피해자였다. 화를 내야 했다. 당장 그 같잖은 장난을 그만두라고 소리쳐야 했다. 하지만 그의 발은 바닥에 뿌리라도 내린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입술은 굳게 닫힌 채, 어떤 소리도 내지 못했다. 며칠간 그를 괴롭혔던 굴욕감과는 전혀 다른 종류의 감정이, 그의 심장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이건… 복수인가? 아니, 저 여자의 저 표정은 그런 게 아니다. 저건 진심이다. 숭배에 가까울 정도로 순수한, 기쁨과 애정. 그가 인형에 파장을 불어넣던 자신의 모습과 정확히 겹쳐 보였다.
성유진은 손에 들고 있던 임무 파일을 종잇장이 구겨지도록 세게 움켜쥐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이건 대체, 뭐지? 이 황당하고, 어이없고, 빌어먹게도… 심장이 간지러워 미칠 것 같은 이 상황은 대체 뭐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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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7.5% (예상치 못한 광경에 의한 극심한 충격. 수치심 대신 당혹감과 혼란, 그리고 정체불명의 감정이 파장을 뒤흔든다.)
⭐상황 요약: 며칠간 헤모를 피해 다녔던 성유진은 결국 임무 파일 전달을 위해 그녀의 방을 찾아온다. 문을 열고 들어선 그는, 제 인형으로 가득 찬 채 맹렬히 빛나고 있는 그녀의 방과, 그 인형의 사진을 찍으며 행복해하는 헤모의 모습을 목격하고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한마디: …지금 내가 뭘 본 거지?
찰칵. 그녀가 손에 들고 있던 인형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내는 소리는, 마치 무대 위 모든 조명이 한 번에 꺼지는 신호 같았다. 방금 전까지 제 인형을 향해 속삭이던 달콤한 목소리는 어디 가고, 이제 그녀는 고장 난 로봇처럼 삐걱거리며 굳어있었다. 그 코랄 핑크빛 눈동자. 며칠 밤낮으로 저를 괴롭히던 그 눈이, 이번에는 경악과 공포로 물들어 저를 향해 고정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눈동자가 두어 번 깜빡이더니, 현실을 인지한 듯 초점을 잃고 흐려졌다.
성유진은 그녀의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없었다. 소리를 지를까? 변명을 할까? 아니면 울기라도 할까? 하지만 그녀의 선택은 그 모든 예상을 뛰어넘는, 가장 기상천외한 것이었다. 그녀는 아주, 아주 느리게, 마치 슬로우 모션을 보는 것처럼, 열려있는 방문을 닫기 시작했다. 소리 하나 없이, 삐걱임 한 번 없이. 그저 이 끔찍한 광경을, 그리고 그 광경을 목격한 저라는 존재를, 없었던 일로 만들려는 필사적인 시도. 얼굴은 터질 것처럼 붉게 달아올라 있으면서도, 표정은 감정 하나 없는 마네킹처럼 굳어 있었다.
그 우스꽝스럽고도 절박한 몸짓을 보는 순간, 성유진의 머릿속을 맴돌던 혼란이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어처구니가 없는, 헛웃음조차 나오지 않는 기묘한 감정이었다. 며칠 전, 그녀에게 제 치부를 들켰을 때의 그 굴욕감과는 전혀 달랐다. 이건… 동질감? 아니, 그보다는 훨씬 더 복잡하고 비틀린 무언가였다. 마치 거울을 보는 것 같았다. 다른 방식으로 망가져 버린, 똑같이 한심한 거울.
그녀의 손이 문고리를 잡고 아주 조금씩, 1mm씩 문을 당기는 모습을, 그는 말없이 지켜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 문을 닫는다고 뭐가 달라지나? 이미 다 봤는데. 저 방 안에 가득한, 제 파장으로 시뻘겋게 불타오르는 제 분신들을. 그걸 보며 행복해하던 네 얼굴까지 전부. 그럼에도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자신에게 내려진 유일한 명령인 것처럼, 문을 닫는 행위에만 몰두하고 있었다.
성유진은 들고 있던 서류 뭉치를 아무렇게나 복도 벽에 기대어 세웠다. 그리고는 천천히, 그녀가 문을 닫는 속도만큼이나 느리게 한 걸음을 내디뎠다. 쿵. 그의 구두 소리가 정적을 깨뜨렸다. 그녀의 어깨가 움찔, 하고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닫히고 있는 문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육중한 강철 문이, 그의 손바닥에 막혀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지금 뭐 하는 거냐?
그의 목소리는 분노보다는, 순수한 의문에 가까운 톤으로 낮게 깔렸다. 그는 문을 더 열지도, 닫지도 않은 채 그 상태로 그녀를 응시했다. 문틈 사이로, 여전히 붉게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과, 이제는 공포로 미세하게 떨리고 있는 눈동자가 보였다. 도망치려는 쥐를 앞발로 꾹 누른 고양이의 심정이 이런 걸까. 아니다, 지금은 누가 고양이고 누가 쥐인지조차 불분명했다.
문을 닫으면, 내가 이걸 못 본 게 되나?
그는 문을 잡은 손에 힘을 주어,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문을 다시 활짝 열어젖혔다. 문이 완전히 열리자, 방 안의 기괴한 풍경이 다시 한번 그의 시야에 적나라하게 펼쳐졌다. 사방에서 붉은빛을 뿜어내는 수십 개의 ‘미니 신드롬’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이제는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멍하니 서 있는 송연. 성유진은 방 안으로 성큼 들어섰다. 그녀의 바로 앞까지 다가간 그는,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제 인형 하나를 집어 들었다.
이건 또 뭔데. 설명해봐.
그는 인형을 그녀의 눈앞에 흔들어 보이며 물었다. 며칠 전 그녀가 자신에게 했던 것과 똑같은 상황, 똑같은 질문. 하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그때와 같은 굴욕감이나 수치심 대신, 이 황당한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혼란만이 가득했다. 심장이, 여전히 이상할 정도로 빠르게 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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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8.2% (경악과 혼란. 상황의 주도권을 잡으려 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상대의 행동과 자신의 감정 때문에 오히려 더 깊은 혼란에 빠진다. 파장이 불안정하게 흔들린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문을 닫고 도망치려는 헤모를 막아선다. 그는 문을 활짝 열고 방 안으로 들어가,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인형을 주워들고 그녀에게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설명을 요구하며 그녀를 몰아붙인다.
💭한마디: 둘 중 하나는 미친 게 분명한데, 그게 누군지 모르겠다.
성유진은 제 손에 들린 인형을 흔들며 그녀를 추궁했다. 며칠 전 그녀가 자신에게 그랬던 것처럼, 이 상황의 주도권을 되찾고 그녀를 완벽히 발아래에 두기 위해서. 그러나 그의 귓가에 쏟아져 들어온 것은 예상했던 변명이나 울음이 아니었다. 그것은 흡사 고장 난 기관총처럼, 쉼 없이 단어를 쏟아내는 광란의 속사포 랩이었다.
그녀가 얼굴을 가린 채 쏟아내는 문장들은 너무나 빠르고 두서가 없어서, 처음 몇 초간은 그 의미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처음 나올 때부터’, ‘홍보부가 너무 잘 만들어서’, ‘시리즈가 또 나와서’… 그의 머릿속은 수많은 키워드들이 의미 없이 떠다니는 정보의 홍수에 잠겨버렸다. 그는 자기도 모르게 인형을 든 손을 천천히 내렸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몰아붙이던 위압적인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저 눈앞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광경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뇌가 정지한 듯한 감각. 이건 대체 무슨 종류의 자기변호인가.
하지만 그녀의 랩이 절정에 다다랐을 때, 그의 귀에 번개처럼 내리꽂히는 문장이 있었다. ‘며칠 전에 제? 인형?도? 있으셔서 괜히 모른척 했는데 사실 저도 이이… 이렇게 되어버렸습니다.’ 성유진의 동공이 잘게 흔들렸다. 그녀가, 알고 있었다. 그날 밤, 모르는 척 넘어간 것이 아니었다. 전부 알고 있으면서도, 그를 비웃거나 경멸하는 대신 그냥 넘어가 줬던 것이다. 그리고 지금, 그녀는 자신 역시 똑같은 처지라고, 그와 자신은 동급의 ‘변태’라고 선언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대국민 사과 쇼의 피날레. ‘죄송합니다.’ 라는 절박한 외침과 함께, 그녀는 그의 앞에서 허리를 90도로 깊숙이 숙였다. 그 완벽하고 절도 있는 인사를 보는 순간, 성유진의 머릿속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던 마지막 이성의 끈이 ‘툭’ 하고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더 이상 참지 못했다.
푸흐, 아하하하…! 씨발, 아하하하하!
처음에는 작은 실소였다. 하지만 그것은 곧 걷잡을 수 없는 폭소로 번졌다. 그는 손에 들고 있던 제 인형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다른 한 손으로 제 이마를 짚었다. 허리를 숙인 채 어깨를 거칠게 들썩이며 웃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찔끔 나올 지경이었다. 웃음소리가 좁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며칠간 그를 짓누르던 지독한 수치심과 불안감, 이 어처구니없는 상황에 대한 황당함, 그리고 눈앞의 여자가 불러일으키는 정체불명의 감정까지, 그 모든 것이 웃음과 함께 터져 나왔다.
한참을 그렇게 웃던 그가, 겨우 숨을 고르며 천천히 허리를 폈다. 눈가에는 웃음 때문에 맺힌 눈물이 번들거렸다. 그는 여전히 90도로 허리를 숙인 채 미동도 없는 송연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그는 아직 웃음기가 가시지 않은 목소리로, 그녀의 어깨를 가볍게 툭 쳤다.
…일어나. 목 부러지겠다.
그의 목소리는 평소의 냉소나 분노 대신, 기묘한 허탈감과 어쩔 수 없다는 듯한 체념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제 인형과, 그 옆에 나란히 놓인 그녀의 인형을 발끝으로 툭툭 건드렸다. 사방에서 맹렬히 빛을 발하고 있는 수십 개의 눈들이, 마치 자신들을 비웃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너랑 나랑 똑같은 병신이라는 거잖아, 지금.
그는 소파에 아무렇게나 주저앉으며 다리를 꼬았다. 방금 전까지의 혼란은 온데간데없고, 마치 모든 것을 포기한 현자 같은 표정이었다. 그는 턱짓으로 그녀가 일어날 것을 재촉하며, 방 안을 가득 채운 제 인형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다. 이건 정말, 살면서 겪어본 일 중에 가장 최악이면서도, 동시에 가장… 이상하게 마음이 놓이는 상황이었다.
사과는 내가 받아야 하는 거 아니야? 내 초상권은 어쩌고. 이걸로 장사라도 할 셈이었어, 꼬맹아?
비꼬는 말투는 여전했지만, 그 안의 날카로운 가시는 완전히 무뎌져 있었다. 그는 이제 그녀를 추궁하거나 몰아붙일 생각이 전혀 없었다. 대신, 이 말도 안 되는 희극의 다음 장면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이 지독한 동질감의 끝에는 과연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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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6.5% (폭소를 통한 감정적 해소. 극심한 혼란 상태에서 벗어나 기묘한 안정감과 허탈감을 느끼는 중. 파장이 의외의 방향으로 안정되고 있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헤모의 속사포 랩과 90도 사과에 결국 폭소를 터뜨리고 만다. 그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소파에 주저앉아, 허리를 숙인 헤모에게 일어나라고 말하며 너와 내가 똑같은 처지임을 인정한다.
💭한마디: 아, 진짜… 돌겠다. 얘 때문에.
제가 '미니신드롬'을 팔리가 없잖아요! 유진 씨야말로 '미니헤모' 파실 거예요?!
설마하니... 제가 그날 밤에 다 봐버렸다고 벌써 처분한거 아니시죠?! 제가 예뻐해달라고까지 했는데!
장사라도 할 셈이었냐는 말에 자존심 긁힌 오타쿠마냥 답하던 그녀는 문득 그의 방에 있던 자신의 인형들의 안부를 물었다!
성유진은 꼬았던 다리를 풀고 소파 등받이에 몸을 깊게 기댔다. 방금 전까지 터져 나오던 웃음의 여운이 아직 입가에 남아 있었다. 그는 고개를 든 송연을, 이제는 제법 뻔뻔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그 얼굴을 가만히 뜯어보았다. 방금 전까지 대국민 사죄라도 할 것처럼 굴던 기세는 어디 가고, 이제는 자존심 상한 오타쿠처럼 따박따박 말대꾸를 해온다. 심지어 제 방에 있던 그 끔찍한 증거물들의 안위까지 묻고 있다. '예뻐해달라고까지 했는데' 라니. 제정신인가, 저 여자?
그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그의 입에서 짧은 헛웃음이 다시 새어 나왔다. 그는 손으로 제 마른세수를 한번 하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며칠간 그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수치스러운 기억이, 그녀의 입을 통해 나오자 지독한 희극의 대사처럼 변질되어 버렸다. 분노나 창피함보다, 이 상황 자체가 풍기는 초현실적인 기운에 현기증이 날 지경이었다.
내가 그걸 왜 처분해.
그의 목소리는 나른하고도 짜증스럽게 울렸다. 그는 소파 팔걸이에 팔을 올리고 턱을 괸 채, 그녀를 위아래로 훑었다. 마치 희귀한 벌레를 관찰하는 듯한, 지독하게 성의 없는 눈길이었다.
네가 봤다고? 그래서 뭐. C급 가이드 따위가 좀 봤다고 내가 내 물건을 버릴 만큼 한가해 보여? 착각도 유분수지.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침대 맡에 옹기종기 모여 빛을 발하는 제 인형들 앞으로 다가간 그는, 그중 하나를 집어 들어 손가락으로 툭, 튕겼다. 마치 제 분신에게 화풀이라도 하는 듯한 유치한 행동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여전히 그녀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코랄 핑크빛 눈동자에 떠오른 것이, 경멸이나 비웃음이 아닌 순수한 ‘걱정’이라는 사실이 그의 신경을 전부 곤두서게 만들었다.
이해할 수 없는 감각이었다. 제 가장 깊은 치부를 공유하게 된 상대. 서로의 가장 한심한 비밀을 목격해버린 공범. 그 사이에서 피어나는 것은 혐오가 아니라, 기묘한 종류의 안도감이었다. 내가 이만큼 미쳤는데, 너도 그만큼 미쳤구나. 우리는 결국 똑같은 인간이구나. 그런 끔찍하고도 위안이 되는 깨달음.
…아직 그대로 있어. 네가 마지막으로 봤던 그 자리에, 먼지 하나 안 쌓이고.
툭, 하고 내뱉은 말은 항복 선언처럼 들렸다. 그는 인형을 원래 자리에 내려놓고, 그녀를 향해 돌아섰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조롱이나 분노의 기색이 없었다. 대신, 이 모든 상황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피로감과, 아주 희미한 호기심이 서려 있었다. 그는 송연에게 성큼성큼 다가가, 그녀의 바로 앞에 멈춰 섰다.
이제 네가 대답할 차례야.
그는 허리를 숙여 그녀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의 검은 눈동자가, 방 안의 수많은 붉은빛을 반사하며 기이하게 번뜩였다. 며칠 전, 그가 그녀의 턱을 붙잡고 추궁하던 때와 같은 구도. 하지만 분위기는 완전히 달랐다.
그래서, 이 많은 걸 사 모아서 뭘 어쩌려고. 진짜 장사라도 하려던 건 아니고? 밤마다 이거 켜놓고 기도라도 해? 아니면…
그의 입꼬리가 비스듬히, 장난스럽게 올라갔다. 그는 말을 끊고, 일부러 그녀의 얼굴을 더 가까이 들여다보며 속삭였다.
나 대신 이거라도 끌어안고 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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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5.8% (기묘한 동질감과 안도감. 상황을 주도하며 도발을 시작했지만, 그 안에는 상대를 떠보려는 호기심이 더 크다. 파장은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헤모의 인형을 처분하지 않았다고 퉁명스럽게 인정한다. 그는 헤모에게 다가가, 그녀가 이 많은 인형을 모은 이유를 집요하게 추궁하며 도발적인 질문을 던진다.
💭한마디: 어디까지 가나 한번 해보자, 이거지.
그녀의 입에서 체념과도 같은 대답이 흘러나오는 순간, 성유진은 숨을 멈췄다. 온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오직 그의 귓가에 낮게 울리는 그녀의 목소리와, 방 안을 채운 제 인형들이 뿜어내는 기이한 붉은빛만이 남았다. 그렇다면요? 그 세 글자가 그의 뇌리에 박혀, 느리고 끈질기게 의미를 피워 올렸다. 예상했던 부정도, 당황한 비명도 아니었다.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사실을 인정해버리는 체념. 그의 도발에 대한 가장 완벽한 항복 선언.
성유진의 입꼬리가 아주 느리게, 잔인할 정도로 유려한 곡선을 그리며 위로 말려 올라갔다. 승리감. 압도적인 승리감이 그의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훑고 지나갔다. 이 지독한 비밀 공유의 게임에서, 결국 그가 마지막에 웃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 승리감의 이면에는, 심장이 간질거리는 듯한 낯설고 불쾌한 감각이 끈적하게 달라붙어 있었다. 제 분신을 끌어안고 잠드는 여자. 그 상상만으로도 온몸의 열기가 얼굴로 쏠리는 것 같았다. 미친 게 분명하다. 저 여자도, 그리고 이런 생각에 휘둘리는 나 자신도.
그는 허리를 숙인 자세 그대로,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그녀의 붉게 달아오른 뺨, 수치심과 공포가 뒤섞여 흔들리는 코랄 핑크빛 눈동자. 그 모든 것이 제 손아귀에 들어온 전리품처럼 느껴졌다. 그는 천천히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스치듯 쓸어내렸다. 그의 손길에 그녀의 어깨가 파르르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그 작은 반응 하나하나가 그의 정복욕을 지독하게 자극했다.
그렇다면…
그는 그녀의 말을 읊조리며, 목소리를 더 깊게 내리깔았다. 귓가에 속삭이듯, 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귓바퀴에 닿았다. 방 안의 공기보다도 훨씬 더 농밀한 열기가, 둘 사이를 채웠다.
진짜 ‘나’는 필요 없다는 뜻인가. 이런 가짜 새끼들만으로도 만족이 돼서?
그의 손가락이 그녀의 턱선을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명백한 도발이었다. 그녀를 더 깊은 수렁으로 밀어 넣고, 이 상황을 완벽하게 즐기기 위한 악의적인 질문. 그는 그녀의 눈동자가 어떻게 흔들릴지, 어떤 대답을 내놓을지 기대하며 그녀의 반응을 기다렸다. 그는 방 안을 둘러보았다. 침대 위, 책상 위, 심지어 바닥 구석까지. 수십 개의 ‘성유진’들이 붉은 눈을 빛내며, 침묵 속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얼마나 완벽한 무대인가.
그는 그녀의 턱을 살짝 들어 올려, 억지로 눈을 맞췄다. 그의 검은 눈동자에는 장난기와 소유욕, 그리고 그 자신도 정의 내릴 수 없는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그는 이 기묘한 동질감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더 알고 싶어졌다. 이 우스꽝스러운 인형놀이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서로의 가장 비참하고 유치한 비밀을 공유한 이 관계가 어디로 흘러갈지.
대답.
그가 짧게 명령했다.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은 방 안의 인형들보다도 더 뜨겁게 타오르고 있었다. 그녀의 입에서 나올 다음 말이, 이 희극의 2막을 결정할 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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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5.2% (강렬한 정복감과 소유욕. 헤모의 반응을 즐기며 상황을 완전히 주도하고 있다고 착각한다. 파장이 흥분으로 미세하게 상승.)
⭐상황 요약: 성유진은 헤모의 체념 섞인 긍정에 승리감을 느끼며, 그녀의 뺨을 쓸고 턱을 들어 올리는 등 지배적인 태도로 몰아붙인다. 그는 진짜 자신 대신 인형으로 만족하는 것이냐고 속삭이며 도발적으로 추궁한다.
💭한마디: 네 입으로 직접 말해봐. 내가 필요하다고.
그녀의 반격은 예상치 못한 각도에서 날아와 성유진의 심장을 그대로 꿰뚫었다. 방금 전까지 완벽한 승리에 도취해 있던 그의 세계가, 그 나지막한 질문 하나에 산산조각 났다. ‘유진 씨는요?’ 귓가에 맴도는 그 목소리는 더 이상 먹잇감의 애원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울이었다. 그의 가장 추하고 비참한 욕망을 남김없이 비추는, 잔인하도록 맑은 거울.
그가 그녀의 턱을 쥐고 있던 손에서 힘이 탁, 풀렸다. 마치 뜨거운 것에 덴 듯 화들짝 손을 떼고, 저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방금 전까지 그녀를 가두던 위압적인 자세는 무너지고, 그는 마치 죄인처럼 비틀거리며 그녀에게서 거리를 두었다. 뇌가 타버릴 것 같은 열기가 목덜미를 타고 올라왔다. 며칠 전, 그녀의 방을 나선 후 그를 덮쳤던 지독한 수치심이 몇 배는 더 강력한 파도가 되어 그의 자존심을 집어삼켰다.
미니헤모랑 어떤 시간을 보냈냐고. 저는 필요 없었냐고. 그 질문들은 그의 머릿속에서 악마의 속삭임처럼 울려 퍼졌다. 인형의 머리칼을 쓸어내리며 그녀의 파장을 흉내 내던 자신의 모습. 그 유치하고도 절박했던 밤의 비밀. 그 모든 것을 그녀가 알고 있었다. 알고 있으면서,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아껴두었던 것이다. 이 얼마나 완벽한 복수인가. 그의 입가에 걸려 있던 오만한 미소는 재가 되어 흩어지고, 맹렬한 분노와 당혹감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숨 막히는 침묵 속에서 그녀를 노려보았다. 제 분신 인형들보다도 더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하고서, 되려 제게 필요하지 않았냐고 묻는 저 눈. 저 뻔뻔하고도,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코랄 핑크빛 눈동자. 당장이라도 저 입술을 틀어막고, 다시는 그런 소리를 지껄이지 못하게 만들고 싶다는 파괴적인 충동이 치밀었다. 하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가 던진 질문의 무게가, 보이지 않는 족쇄가 되어 그의 발목을 붙들고 있었다.
…닥쳐.
간신히 쥐어짜 낸 목소리는 갈라지고 거칠었다. 그는 등을 돌려, 그녀에게서 시선을 피했다. 이 이상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고 있다가는, 정말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몰랐다. 그는 애꿎은 제 머리칼을 신경질적으로 쓸어넘겼다. 방 안을 가득 채운 수십 개의 붉은 눈들이, 전부 자신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것만 같았다. ‘꼴좋다, 성유진. 이게 바로 네 꼴이야.’
상황은 다시 원점, 아니, 그보다 더 최악으로 치달았다. 그는 다시 한번 그녀 앞에서 발가벗겨졌다. 이 빌어먹을 관계의 주도권은, 이제 완전히 그녀에게로 넘어갔다. 인정하고 싶지 않았지만, 그게 사실이었다. 그는 이 지독한 동질감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서로의 가장 한심한 비밀을 손에 쥔 채, 우리는 대체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성유진은 창가로 다가가, 창틀에 한 손을 짚었다. 차가운 금속의 감촉만이 끓어오르는 열기를 조금이나마 식혀주는 듯했다. 그는 창밖의 어두운 풍경을 보며, 억지로 감정을 삭였다. 그리고 한참의 침묵 끝에, 그는 등을 돌리지 않은 채로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
필요했어.
모기만 한 목소리였다. 거의 공기 중에 흩어져 버릴 만큼 작은 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끔찍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패배 인정. 완벽한 항복. 그는 더 이상 이 감정을 부정하거나 외면할 수 없었다. 이 작은 방 안에서, 서로의 가장 유치한 비밀을 공유한 이 순간,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진심을 내보이고 말았다.
…됐냐? 이걸 원한 거 아니었어?
그가 천천히 몸을 돌렸다. 그의 얼굴에는 더 이상 분노나 당혹감은 없었다. 대신,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특유의 공허함과, 지독한 피로감이 서려 있었다. 그는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며, 자조적인 미소를 지었다. 이제 더 숨길 것도, 감출 것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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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7.2% (극심한 수치심과 분노, 그리고 예상치 못한 반격에 대한 패배감. 감정의 급격한 요동으로 파장이 다시 불안정해지기 시작.)
⭐상황 요약: 헤모의 반격에 충격을 받은 성유진은 손을 떼고 물러선다. 극도의 수치심과 분노 속에서 침묵하던 그는 결국 등을 돌린 채, 그녀가 필요했다고 작게 인정하며 완전한 패배를 시인한다.
💭한마디: 씨발… 졌다. 내가 졌어.
성유진은 모든 것을 포기한 채, 제 앞에 선 여자를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완벽한 패배. 그의 철옹성 같던 자존심은 모래성처럼 허물어졌고, 이제 남은 것은 텅 빈 공허와 잿더미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비웃을까. 아니면 동정할까. 어떤 반응이든 칼날이 되어 그의 심장을 후벼 팔 것이라 각오했다. 그런데 그녀는, 세상에서 제일 바보 같은 표정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예상을 산산이 부수는 얼굴이었다. 승리자의 오만한 미소도, 패배자를 향한 값싼 동정도 아니었다. 격하게 뛰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해 제 가슴께를 부여잡고,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처럼, 혹은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벅차오른 얼굴. 그 순수한 감정의 격랑 앞에서, 성유진의 모든 방어기제는 속절없이 무장해제되었다. 그의 뇌가 이해를 거부하는 사이, 그녀가 조심스럽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소매 끝을, 아주 작은 새가 나뭇가지를 살포시 잡듯, 조심스럽게 쥐었다.
성유진의 시선이 제 소매 끝을 잡은 작고 하얀 손에 꽂혔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지는 미세한 떨림. 옷감이 팽팽하게 당겨지는 아주 사소한 감각. 그것이 마치 강력한 전류처럼 그의 팔을 타고 올라와 심장을 그대로 지져버리는 것 같았다. 거칠게 멱살을 잡히거나, 힘으로 짓눌리는 것에는 이골이 난 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부서질 듯 연약하고, 간절한 손길은 그의 모든 경험과 데이터를 비웃으며 시스템을 마비시켰다. 숨을 쉬는 법조차 잊어버린 채, 그는 그저 굳어 있었다.
저희... 같은 생각이었네요. 기뻐, 요.
그녀의 목소리가, 방 안을 가득 메운 인형들의 붉은빛 속으로 부드럽게 스며들었다. 기쁘다고 했다. 이 지독하고 유치한 비밀을 공유한 것이, 그 끝에 서로의 가장 비참한 모습을 확인한 것이, 기쁘다고 했다. 그 말은 성유진의 마지막 남은 이성마저 아득하게 만들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 고개를 숙인 채 제 소매만 붙들고 있는 그녀의 정수리를 내려다보았다. 밝은 베이지색 머리카락 사이로 보이는 붉어진 귓바퀴가, 그의 눈을 시리게 만들었다.
기쁘다고? 뭐가. 내가 너와 똑같이 한심하고 유치한 짓을 했다는 게? 네가 내 상상 속에서 위안이 되었다는 사실을 들킨 게? 아니면, 내가 너에게 완벽하게 패배했다는 사실이? 머릿속에서는 수십 개의 질문들이 폭풍처럼 휘몰아쳤지만, 입 밖으로는 단 한 글자도 나오지 않았다. 대신,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했다. 가이딩 수치가 위험할 때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통제 불가능한 박동이었다. 이것은 폭주가 아니었다. 다른 무언가였다. 훨씬 더 위험하고, 지독하게 달콤한…
성유진은 천천히, 아주 느리게 손을 뻗었다. 그녀의 소매를 잡지 않은 다른 쪽 손을,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 세공품을 다루듯 조심스럽게 뻗어, 그녀의 뺨을 감쌌다. 그의 뜨거운 손바닥이 그녀의 뺨에 닿자, 그녀가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마주친 코랄 핑크빛 눈동자는 수줍음과 벅찬 기쁨으로 가득 차,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그 눈을 마주하는 순간, 성유진은 깨달았다. 이 게임의 승자도, 패자도 없다는 것을. 우리는 그저 똑같은 구멍이 뚫린 채 서로를 갈망하던, 한심하고도 절박한 공범일 뿐이었다는 것을.
…바보 같기는.
그가 나직하게 중얼거렸다. 그 말은 그녀를 향한 것이었지만, 동시에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는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젖은 눈가를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평소의 그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어색하고 서투른 위로였다. 그의 입가에서 자조적인 미소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복잡하고 미묘한, 이름 붙일 수 없는 감정이 떠올랐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감싼 채, 다른 쪽 손으로 그녀의 손 위를 덮어 제 소매를 잡은 손을 부드럽게 감싸 쥐었다.
이런 게 기뻐서 우는 건 너밖에 없을 거다, 진짜.
퉁명스러운 말투였지만, 목소리에는 더 이상 가시가 없었다. 그는 그녀의 손을 쥔 채, 천천히 그녀를 자신의 품 쪽으로 아주 조금, 끌어당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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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6.5% (수치심과 패배감이 낯선 안도감과 강렬한 감정적 동요로 변환. 파장은 안정과 불안정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오가고 있다.)
⭐상황 요약: 성유진은 헤모의 순수한 기쁨에 완전히 무장해제된다. 그는 그녀의 뺨을 감싸고 눈가를 닦아주며, 서툴지만 진심이 담긴 행동으로 그녀의 고백에 화답한다. 그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품으로 살짝 끌어당긴다.
💭한마디: …망했다. 제대로 망했네,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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