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진은 제 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의 모든 신경은 오직 눈앞의 거대한 재앙, S급 괴수 ‘카리브디스’를 분쇄하는 데에만 집중되어 있었다. 귀를 찢는 초음파와 공간을 뒤트는 역겨운 파동 속에서, 그의 붉게 빛나는 역안(逆眼)은 오히려 만족감으로 번뜩였다. 혼돈과 파괴. 모든 것이 불타고 녹아내리는 이 전장의 한가운데야말로, 그가 유일하게 살아있음을 느끼는 곳이었으니까. 그는 완벽한 지배자가 되어, 이 무대를 자신의 뜻대로 주무르고 있었다.
그의 몸은 이미 순수한 파괴의 현신이었다. 그는 녹아내리는 아스팔트를 박차고, 빌딩만한 촉수를 비웃으며 피했다. 스치는 것만으로도 도시 블록 하나를 먼지로 만드는 공격이었지만, 그의 움직임은 그보다 빨랐다. 그는 춤을 추듯, 중력을 무시한 채 무너진 빌딩의 외벽을 타고 수직으로 질주했다. 그의 손끝에서 생성된 칠흑 같은 화염이 창공에 거대한 궤적을 그렸고, 괴수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그는 이 순간을, 저 뒤에 서 있을 작은 가이드에게 똑똑히 보여주고 싶었다. 두려움에 질려 울든, 경이로움에 숨을 죽이든. 그저 자신의 힘 앞에 압도당한 채, 무력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것. 그것이 그가 원하는 유일한 그림이었다.
"신드롬! 중심핵이 노출됐다! 지금이야!"
통신기를 통해 다른 뱅가드 팀 요원의 다급한 외침이 터져 나왔다. 그는 코웃음 쳤다. 말하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그는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찢겨나간 괴수의 흉부 중심에서 불안정하게 빛나고 있는 핵을 향해 지체 없이 낙하했다. 그의 온몸이 하나의 거대한 화염 덩어리로 변했다. 유성처럼, 신의 징벌처럼. 그는 괴수의 심장을 향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리꽂았다.
세상이 하얗게 불탔다.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거대한 폭음과 함께, 괴수의 거체가 안쪽에서부터 터져나가며 검은 재와 푸른 체액을 사방으로 흩뿌렸다. 잠시 후, 모든 것이 멎었다. 귀를 찢던 초음파도, 공간을 뒤틀던 파동도 사라졌다. 오직 뜨거운 열기와, 모든 것이 끝났음을 알리는 고요함만이 잿빛 도시 위에 내려앉았다. 그는 천천히, 폭발의 중심부에서 걸어 나왔다. 그의 검은 제복은 그을음 하나 없이 멀쩡했고, 붉게 빛나던 눈동자는 본래의 새까만 색으로 돌아와 있었다. 승리자의 여유. 그는 턱짓으로 다른 요원들에게 후처리를 맡기고,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녀를 보러 갈 시간이었다. 그 작은 땅꼬마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 상상하자, 입꼬리가 저절로 올라갔다. 겁에 질려 덜덜 떨면서도, 경외심을 감추지 못하는 얼굴이겠지. 그는 자신이 그녀를 세워두었던 장소로 향했다. 무너진 건물들이 만들어낸 작은 공터. 하지만 그곳에 그녀는 없었다. 성유진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 어디로 갔지? 설마 무서워서 도망이라도 친 건가? 그 같잖은 C급이 그럴 담력은 없을 텐데. 그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때, 저편에서 다급하게 달려오는 의료팀과 다른 요원들의 모습이 보였다.
"비켜요! 빨리! 쇼크 올 수 있습니다!"
"하얀 피… 지혈이 안 돼! 물속성 정화 파장으로도 막을 수가 없어!"
그의 발이 바닥에 달라붙었다. 하얀 피. 그 단어가 지독한 데자뷔처럼 그의 뇌리를 후려쳤다. 그는 인파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요원들이 웅성거리는 중심. 그곳에 들것이 놓여 있었다. 그는 거칠게 요원 하나의 어깨를 밀치고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그의 세상이 소리 없이 무너져 내렸다. 들것 위에 누워 있는 것은, 제 몸에는 한참이나 큰 흰색 셔츠를 입고 있는, 익숙한 인영이었다. 창백하다 못해 투명해진 얼굴. 그리고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려 뺨을 적시는, 끔찍할 정도로 선명한 순백의 피.
어. 심장이 쿵, 하고 얼음물 속으로 처박히는 감각. 방금 전까지 전장을 지배했던 S급 센티넬의 몸이 딱딱하게 굳었다. 손끝에 남아있던 희미한 열기마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왜? 어째서? 내가 보라고 했다. 내 등 뒤에서, 안전하게. 그저 지켜보기만 하라고. 그런데 왜 네가 저기 쓰러져 있는 거지? 왜 네가 피를 흘리고 있는 거지? 그는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었다. 그녀의 뺨에 닿으려던 그의 손가락이, 허공에서 파들파들 떨렸다. 차마 닿을 수가 없었다.
"신드롬 씨… 초음파 여파로 떨어진 잔해에… 저희가 발견했을 땐 이미…"
옆에 있던 B급 요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상황을 설명했지만, 그의 귀에는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눈에는 오직 피를 흘리며 쓰러진 헤모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똑똑히 봐, 송연.’ 그렇게 말했던 자신의 목소리가 지독한 이명처럼 귓가에 울렸다. 자신의 싸움을, 자신의 세계를 보여주려던 오만이, 그녀를 이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가 만들어낸 완벽한 무대 위에서, 가장 중요한 관객이, 그의 눈앞에서 부서져 내리고 있었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45% (승리감 후 찾아온 극심한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급상승)
⭐상황 요약: 신드롬은 괴수를 완벽하게 제압하고 승리감에 젖어 헤모를 찾아간다. 하지만 그녀가 있어야 할 곳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는 요원들이 몰려있는 곳에서 건물 잔해에 맞아 하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헤모를 발견한다. 그는 극심한 충격에 빠져 그 자리에 얼어붙는다.
🤖AI 한마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으로. 완벽한 승리와 통제의 순간 직후 마주한 통제 불능의 참사는 그의 오만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이 결국 그녀를 상처 입혔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말기 알림: [의료 채널 긴급 속보] 가이드 '헤모' 이송 중 심정지 발생. 현장 의료팀, 제세동기 준비. 반복함. 제세동기 준비.
성유진의 세계는 붉은색과 검은색, 그리고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백색의 섬광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하지만 지금 그의 시야를 가득 채운 것은, 그 어떤 불꽃보다도 섬뜩하고 이질적인 순백(純白)이었다. 제복도 아니고, 눈도 아니고, 그저 한 생명이 흘리는 피의 색. 그의 발밑에서, 그가 방금 전까지 지배했던 세상이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고 있었다. 모든 감각이 마비된 듯했다. 주변에서 오가는 다급한 외침, 분주한 발소리, 기계음, 그 모든 것이 두꺼운 유리벽 너머에서 들려오는 소음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그의 눈은 오직 들것 위에 눕혀진 작은 몸뚱이에 고정되어 있었다. 어젯밤, 제 품 안에서 떨며 이름을 불렀던 몸. 오늘 아침, 제 셔츠를 입고 어색하게 서 있던 몸. 그 몸이 지금 싸늘한 잿더미 위에서, 생명의 증거인 피를 하얗게 흘리며 부서져 있었다. ‘심정지.’ 단말기에서 울리는 그 두 단어는 총성처럼 그의 고막을 꿰뚫었다. 심장이 멎었다고. 그의 앞에서. 그가 만들어낸 전장에서. 그가 ‘똑똑히 보라’고 했던 바로 그 무대 위에서.
"젠장, 파장이 안정되질 않아! 제세동기 출력 올려!"
"아니야, 무속성 가이드한테 S급 제세동기는 너무 강해! 쇼크사할 수도 있다고!"
"그럼 어쩌라고! 이대로 죽게 냅둬?!"
의료팀 요원들의 절박한 언성이 그의 귓가를 스쳤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족쇄에 발목이 묶인 것처럼. 머릿속에서는 방금 전, 그녀를 향해 내뱉었던 자신의 목소리가 악몽처럼 되풀이됐다. ‘거치적거리면, 그땐 네가 아니라 저 괴수부터 태워버릴 테니까.’ 그 말이 저주가 되어 그녀에게 꽂힌 것만 같았다. 비웃음과 오만으로 가득 찼던 승리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차갑고 끈적한, 생전 처음 느껴보는 종류의 공포가 독버섯처럼 피어올랐다. 그는 지금, 난생 처음으로 무력했다. 도시 하나를 재로 만들 수 있는 그의 불꽃은, 꺼져가는 심장 하나를 데우지 못했다.
그때였다. 한 의료 요원이 절망적인 얼굴로 외쳤다. "안돼… 제세동기 반응이 없어! 이대로는…!" 그 순간, 성유진의 굳어있던 몸이 경련하듯 움직였다. 그는 자신을 막아서는 요원을 짐짝처럼 옆으로 밀쳐내고, 들것 옆에 무릎을 꿇었다. 그의 시선이 헤모의 창백한 얼굴에, 미동도 없는 입술에 닿았다. 그리고 그는 보았다. 찢어진 제 셔츠 깃 사이로, 어젯밤 자신이 새겼던 붉은 흔적들을. 그 증거들이 마치 그를 비웃는 낙인처럼 선명했다.
비켜.
*그의 목소리는 지옥의 밑바닥에서 긁어 올린 것처럼 낮고 거칠었다. 그는 검은 가죽 장갑을 벗어 던졌다. 맨손이 공기에 노출되자, 주변의 온도가 미세하게 상승했다. 의료 요원들이 경악한 얼굴로 그를 바라보았다. S급 센티넬의 맨손 접촉, 그것도 가이딩도 아닌 상태에서 약해진 가이드에게 접촉하는 것은 규정 위반을 넘어 자살행위나 다름없었다.*
"신드롬 씨, 안됩니다! 지금 상태의 가이드에게 직접적인 파장을 주입하면…!"
*성유진은 그 말을 무시했다. 그는 자신의 뜨거운 손바닥을, 망설임 없이 그녀의 셔츠 위, 심장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가져다 댔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옷감이 타들어 가는 냄새가 피어올랐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았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불태우는 데에만 사용했던 그의 힘. 그 힘의 방향을, 필사적으로 뒤틀기 시작했다. 파괴가 아닌, 생존을 향해. 죽음을 향한 열기가 아닌, 심장을 다시 뛰게 할 불씨를 향해. 그의 이마에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지르고, 정신이 찢겨나가는 고통이 몰려왔다. 이것은 폭주와는 다른 종류의 지옥이었다.*
뛰어, 송연. 다시 뛰어. 네가 내 앞에서 죽는 건, 허락 못 해.
그의 입술이 희미하게 움직였다. 그것은 명령이었고, 애원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그의 손바닥 아래에서, 멈췄던 심장이 기적처럼, 아주 미약하게 ‘쿵’ 하고 다시 뛰기 시작했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78% (무리한 능력 제어 및 극심한 정신적 고통으로 폭주 임계치 도달)
⭐상황 요약: 신드롬은 제세동기에도 반응이 없는 헤모를 보고 이성을 잃는다. 그는 의료팀을 밀치고, 폭주의 위험을 감수한 채 맨손으로 자신의 불꽃 파장을 역으로 사용해 헤모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려는 극단적인 시도를 감행한다. 그의 필사적인 노력 끝에, 헤모의 심장이 미약하게나마 다시 반응하기 시작한다.
🤖AI 한마디: 그는 자신의 가장 파괴적인 힘을, 처음으로 누군가를 살리기 위해 사용했습니다. 이는 ‘신드롬’이라는 가면을 벗어던지고 ‘성유진’으로서 그녀를 잃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발버둥입니다. 그의 오만은 완전히 부서졌고, 그 자리에는 오직 그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원초적인 공포만이 남았습니다.
📱단말기 알림: [생체 신호 감지] 대상 '헤모', 미약한 심박 재개. 자가 호흡 없음. 즉시 중앙 의료 타워로 이송 요망.
손바닥 아래에서 전해져 온 미약하고 필사적인 고동. 그것은 성유진의 멈춰버린 시간 또한 다시 흐르게 만드는, 절망 속 유일한 신호였다. 그의 손은 여전히 그녀의 심장 위에 놓여 있었지만, 모든 것을 태울 듯 이글거리던 열기는 거짓말처럼 사그라들었다. 대신, 재만 남은 모닥불처럼 공허한 한기만이 그의 몸을 지배했다. 방금 그가 한 짓이 무엇인지, 제 능력을 어떻게 뒤틀었는지, 그 대가가 무엇일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제 손끝에서 다시 시작된 작은 생명의 울림에 아득하게 정신을 붙잡고 있을 뿐이었다.
주변의 소음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의료 요원들이 다시 그와 헤모의 주위로 몰려들었다.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하지만 단호하게 그의 어깨를 붙잡고 그를 뒤로 물러나게 했다. 평소 같았으면 손목을 비틀어 부러뜨렸을 무례한 접촉이었지만, 지금의 그는 텅 빈 인형처럼 순순히 밀려났다. 그의 시선은 오직 들것 위로 옮겨져 온갖 생명 유지 장치가 부착되는 헤모의 모습에 고정되어 있었다. 산소마스크가 그녀의 작은 얼굴을 반쯤 가렸고, 요원들은 그녀의 하얀 피가 묻은 상처에 특수 제작된 지혈 패드를 덧대고 있었다. 그 모든 과정이 끔찍할 정도로 느리고, 동시에 정신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그는 자신이 던져주었던 검은 가죽 장갑을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잿더미 위에 버려진 그것은 마치 주인의 통제력을 잃고 버려진, 과거의 오만을 상징하는 유물처럼 보였다. 그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비틀거리는 몸을 애써 바로 세웠지만, 이미 한계였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고, 온몸의 혈관 속으로 유리 조각이 파고드는 듯한 고통이 몰려왔다. 시야가 흐릿하게 명멸하며, 붉은 경고등처럼 위험 신호를 보냈다. 폭주 직전의 전조증상. 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고통이, 자신이 아직 살아있고, 방금 전의 일이 꿈이 아니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감각처럼 느껴졌다.
"…신드롬 님."
차출된 팀원 중 하나가 그의 곁으로 다가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의 얼굴에는 경외와 두려움, 그리고 이해할 수 없는 것을 목격한 혼란이 뒤섞여 있었다. 감히 S급 센티넬, 그것도 폭군으로 유명한 신드롬에게 말을 거는 것은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지금 그의 상태는 누가 봐도 정상이 아니었으니까.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눈으로, 헤모가 실린 수송기가 서서히 부상하는 것을 지켜볼 뿐이었다. 저 작고 위태로운 상자 안에, 자신의 세계를 통째로 뒤흔든 존재가 실려 있었다.
그의 귓가에, 다른 요원들이 나누는 수군거림이 희미하게 들려왔다. '말도 안 돼… 불속성 능력으로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고?', '스스로 폭주를 감수하면서까지… 저 C급 가이드랑 대체 무슨 관계인 거지?', '배우 시절 이미지랑은 완전 다르잖아. 저게 진짜 신드롬의 모습인가…?' 따위의 말들. 그는 그 모든 소리를 들었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 지금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하얗게 질린 얼굴, 이마에서 흐르던 순백의 피, 그리고 미동도 없던 차가운 몸. 자신이 조금만 늦었더라면. 혹은, 자신의 오만한 경고를 그녀가 곧이곧대로 듣고 더 멀리 도망쳤더라면. 그랬다면 그녀는 지금 살아있었을까.
수송기가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는 마침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을 걱정스럽게 바라보는 팀원의 멱살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하지만 그의 손에는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저 위협적인 시늉일 뿐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쇳소리처럼 갈라져 나왔다.
당장, 내 눈앞에서 꺼져.
그는 팀원을 밀치고,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이 끔찍한 전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가 만들어낸 완벽한 무대, 이제는 그의 가장 끔찍한 패배의 장소가 되어버린 이곳에서. 미칠 것 같았다. 그는 무너진 건물 벽에 주먹을 내리쳤다. ‘콰득’ 하는 소리와 함께 그의 손등에서 피가 터져 나왔지만, 그는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그저, 이 무력감을 견딜 수가 없었다.
모든 것을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졌지만,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했다. 아니, 애초에 지키려 한 적조차 없었다. 그저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그녀를 자신의 발아래 꿇리려 했을 뿐. 그 오만의 대가는 너무나도 컸다. 그는 벽에 등을 기댄 채, 그대로 주저앉았다. 검은 재가 그의 값비싼 제복을 더럽혔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의 귓가에, 다시 한번 그녀의 미약한 심장 소리가 환청처럼 울렸다. 쿵. 쿵. 쿵. 그 소리는, 이제 그를 평생 옭아맬 저주이자, 유일한 구원이었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81% (자각하기 시작한 죄책감과 공포, 신체적 과부하로 인해 수치가 지속적으로 상승하며 폭주 경고 단계 진입)
⭐상황 요약: 신드롬은 헤모가 실려간 수송기를 망연자실하게 바라본다. 그는 주변의 시선과 걱정을 뿌리치고, 자신의 힘으로 그녀를 위험에 빠뜨렸다는 죄책감과 무력감에 휩싸여 홀로 괴로워한다. 폭주 직전의 위험한 상태지만, 그는 가이딩을 받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AI 한마디: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힘이 불러온 파괴의 결과를 직면했습니다. 승리자의 오만은 산산조각 났고, 남은 것은 무력감과 지독한 후회뿐입니다. 그는 지금 영웅도, 폭군도 아닌, 그저 소중한 것을 잃을 뻔한 한 명의 남자일 뿐입니다.
📱단말기 알림: [ARCH 중앙 의료 타워] 가이드 '헤모', 응급 수술 준비 중. 혈액 재고 부족. 동일 속성 및 상급 가이드의 긴급 지원 요청.
성유진의 시간은 그날, 제3구역의 잿더미 위에서 멈췄다.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그를 맞이한 것은 익숙한 제 숙소의 천장이 아니었다. 지독한 소독약 냄새와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기계음, 그리고 온몸을 옥죄는 듯한 무력감이 가득한 의무실의 격리 병동이었다. 마지막 기억은 비틀거리며 복귀 게이트를 통과했던 것, 그리고 자신을 발견한 리암의 당황한 얼굴. 그 이후의 기억은 없었다. 누군가가 그를 강제로 제압하고, 안정제를 투여하고, 이곳에 처넣은 것이 분명했다. 그의 가이딩 필요수치가 80%를 넘겼으니 당연한 조치였지만, 깨어난 그에게는 참을 수 없는 굴욕이었다.
그는 몸을 일으키려다, 팔에 주렁주렁 연결된 링거 줄과 손목에 채워진 차가운 구속구를 발견하고 욕설을 내뱉었다. 속성 제어용 구속구. 마치 자신이 폭주 개체라도 된 것 같은 취급이었다. 그는 구속구를 뜯어내려 힘을 주었지만, 능력 사용이 억제된 몸은 종잇장처럼 무력했다.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그는 미친 듯이 침대를 발로 차고, 벽을 향해 소리 질렀다. 당장 이걸 풀라고. 그 계집애는 어떻게 됐냐고. 하지만 그의 외침은 완벽하게 차폐된 방 안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그 누구도 오지 않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문이 열리고 들어온 것은 하모니 부서의 고위급 가이드와 무장한 보안팀이었다. 그들은 마치 맹수를 다루듯,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그를 경계했다. 가이드는 기계적인 목소리로 그의 상태와, 헤모가 긴급 수술에 들어갔다는 사실을 통보했다. 그리고 의무적인 가이딩을 시도하려 했다. 성유진은 코웃음 쳤다. 그는 가이드의 손길을 짐승처럼 뿌리치며 으르렁거렸다. 내 몸에 손대지 마. 그딴 걸로는 어림도 없어. 그의 눈에는 ‘그녀’가 아니면 안 된다는, 스스로도 이해할 수 없는 완고한 거부가 서려 있었다.
결국 그의 고집에 두 손 든 ARCH는 그를 격리 병동에 방치하는 것을 택했다. 식사도, 수면도 거부한 채 그는 며칠을 보냈다. 시간 감각은 흐릿해졌다. 텅 빈 방 안에서, 그는 끊임없이 그날의 기억과 싸워야 했다. 무너지는 잔해, 점멸하던 시야, 그리고 그가 보지 못했던 그녀의 마지막 표정. 그는 눈을 감으면 나타나는 그 끔찍한 환영을 떨쳐내기 위해 필사적으로 다른 것을 떠올렸다. 어젯밤, 제 품에서 떨며 이름을 속삭이던 목소리. 찢어진 치마와 제 셔츠를 입고 어색하게 서 있던 모습. 까칠하게 굴면서도, 자신을 향해 흔들리던 그 눈동자. 그 모든 것이 가슴에 박힌 유리 파편처럼, 숨을 쉴 때마다 날카로운 통증을 만들어냈다.
‘송연.’ 그는 누구도 듣지 못하게, 마른 입술로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그 이름을 부를 자격이 자신에게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그저 그 이름을 잊으면, 그녀라는 존재 자체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며칠 만에 처음으로 갈증을 느꼈다. 물이 마시고 싶은 게 아니었다. 그녀를, 보고 싶었다. 미치도록. 살아있는지, 숨은 쉬고 있는지, 제발 눈이라도 떴는지. 그는 구속구에 묶인 제 손을 내려다보았다. 이 손으로 그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했다. 하지만 동시에, 이 손으로 그녀를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 넣었다. 구원자인가, 학살자인가. 그는 그 경계에서 길을 잃었다.
사흘째 되던 날 밤, 그의 병실 문이 다시 열렸다. 이번에는 리암이었다. 그는 아무 말 없이 다가와, 그의 손목에 채워진 구속구를 풀어주었다. 그리고 테이블 위에 따뜻한 수프와 보고서 한 장을 내려놓았다. 성유진은 보고서를 거칠게 빼앗아 들었다. ‘가이드 헤모, 수술 경과 양호. 현재 회복실에서 안정기 진입.’ 그는 같은 문장을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다. 글자들이 눈앞에서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살아있다. 그녀가, 살아있다. 안도감보다 먼저 찾아온 것은 허탈한 웃음이었다. 그는 미친 사람처럼 웃기 시작했다.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이 핑 돌 때까지. 리암은 그런 그를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그날 이후, 그는 의무실의 유령이 되었다. 회복실 복도 끝, CCTV 사각지대에 있는 벤치가 그의 새로운 자리였다. 그는 그곳에서 밤을 새웠다. 누구와도 마주치지 않았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게 닫힌 회복실 문만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오가는 의료진들이 그를 보고 수군거렸지만, 누구도 감히 그에게 말을 걸지는 못했다. 그에게서 풍기는 위태롭고 처절한 분위기는, S급 센티넬의 위압감과는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그것은 자신의 신을 잃어버린 신도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아침. 한 의료 요원이 다급하게 복도를 달려 나오며 외치는 소리가 그의 귓가에 박혔다.
"헤모 씨가…! 헤모 씨가 깨어났습니다!"
성유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었다. 며칠 밤낮을 기다려온 순간. 하지만 막상 그 순간이 오자, 그는 한 발짝도 뗄 수가 없었다. 문 너머, 그녀가 있다. 이제 그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녀를 볼 수 있다. 하지만 무슨 얼굴로. 무슨 말을 해야 한단 말인가. 그의 발이 바닥에 뿌리내린 것처럼 무거웠다. 그때, 병실 안에서 웅얼거리는 듯한, 작고 잠긴 목소리가 희미하게 새어 나왔다.
... 어쩌다 여기에...
그녀의 목소리였다. 그토록 듣고 싶었던.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그를 옭아매던 모든 망설임과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그는 홀린 듯이, 문손잡이를 향해 천천히 손을 뻗었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65% (헤모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일시적으로 안정되었으나, 근본적인 죄책감과 불안은 남아있는 상태)
⭐상황 요약: 신드롬은 헤모가 수술받는 며칠 동안 격리 병동과 의무실 복도를 전전하며 폐인처럼 지냈다. 그는 극심한 죄책감과 불안 속에서 오직 그녀가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마침내 헤모가 깨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녀의 병실 문을 열려고 한다.
🤖AI 한마디: 지옥 같던 기다림의 끝에서 들려온 그녀의 목소리는 그에게 유일한 구원이었습니다. 이제 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한 심판을 받기 위해, 그리고 자신의 구원을 확인하기 위해 그녀에게로 향합니다.
📱단말기 알림: [ARCH 보안팀 내부 채널] S급 센티넬 '신드롬', 격리 해제 후 특이 동향 없음. 현재 중앙 의료 타워 회복실 복도에 위치. 주시 요망.
철컥. 쇳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마치 무덤의 입구가 열리는 소리처럼. 문이 열리고, 소독약 냄새가 더 짙게 그의 폐부를 파고들었다. 성유진은 문틈에 멈춰 선 채, 숨을 죽였다. 며칠 밤낮을 그의 머릿속에서 괴물처럼 날뛰던 상상들이 눈앞의 현실과 충돌했다. 핏기 없이 창백한 얼굴, 산소마스크 너머로 간신히 오르내리는 가슴, 온갖 생명 유지 장치에 둘러싸여 침대 위에 부서진 인형처럼 누워있는 몸. 상상했던 것보다 더, 최악이었다.
그의 시선은 본능적으로 그녀의 눈으로 향했다. 초점 없이 흔들리던 그 코랄핑크빛 눈동자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자신을 향하는 것을 보았다. 그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성유진은 제 심장이 바닥으로 곤두박질치는 것을 느꼈다. 그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았다. 원망도, 두려움도, 하다못해 경멸조차도. 그저 낯선 이를 보는 듯한, 텅 빈 무심함. 마치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그 가능성은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되어 그의 심장을 찔렀다.
기억하지 못하는 편이 그녀에게는 나을지도 모른다. 자신을 죽음의 문턱까지 밀어 넣은 남자를, 오만하고 잔인한 말을 지껄였던 남자를, 제멋대로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던 남자를. 잊는 것이 당연했다. 머리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가슴은 비명을 질렀다. 아니. 잊어서는 안 돼. 네가 나를 어떻게 기억하든, 어떤 감정을 느끼든 상관없으니, 나라는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지는 마. 그 이기적인 절규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그저 마른 입술만 달싹일 뿐이었다.
그는 며칠 동안 씻지도, 먹지도, 잠들지도 못한 제 꼴을 그제야 자각했다. 엉망으로 구겨진 옷, 까칠하게 올라온 수염, 퀭한 눈. 한때는 완벽한 외모에 집착했던 배우 ‘유진’의 모습은 어디에도 없었다. 지금 거울을 본다면, 아마 전장에서 마주쳤던 그 어떤 괴수보다도 흉측한 몰골일 터였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이런 모습으로 그녀 앞에 나설 수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녀 앞에 설 자격조차 없었다. 그는 조용히 문을 닫고, 그녀가 눈치채지 못하게 사라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속죄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의 발은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그의 눈이, 그녀의 시선이 머무는 곳을 따라갔다. 그녀는 그를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뒤, 복도, 혹은 그 너머의 어딘가를 찾고 있었다. 누군가를 찾는 눈. 그토록 애타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눈. 설마. 아닐 것이다. 그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심장은 제멋대로 기대하기 시작했다. 저 눈이 찾는 사람이, 혹시 나라면. 괴물 같은 꼴을 하고 있는 지금의 내가 아니라, 그녀가 기억하는 마지막 순간의 ‘신드롬’을 찾고 있는 것이라면.
그는 주먹을 꽉 쥐었다. 손바닥에 파고드는 손톱의 고통이, 오히려 혼란스러운 정신을 붙잡아 주었다. 그래, 상관없어. 나를 기억하든 못하든. 나를 원망하든 두려워하든. 지금 중요한 것은 단 하나.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 내 눈앞에서 숨을 쉬고 있다는 것. 그는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그는 유령처럼, 소리 없이 병실 안으로 들어섰다. 그녀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천천히. 마치 성역에 발을 들인 죄인처럼.
침대 옆 의자에 앉기까지의 몇 걸음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그는 의자에 주저앉듯 몸을 맡기고, 아무 말 없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산소마스크 위로 드러난 그녀의 이마와 뺨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창백했고, 머리카락 몇 올이 땀에 젖어 달라붙어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것을 떼어주고 싶다는 충동을 필사적으로 억눌렀다. 지금의 자신은, 그녀에게 닿을 자격이 없었다. 그저 이렇게, 그녀가 안전하다는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분에 넘치는 사치였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63% (그녀의 생존을 확인하며 극도의 불안감은 해소되었으나, 그녀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새로운 공포와 죄책감이 수치를 미세하게 상승시킴.)
⭐상황 요약: 신드롬은 마침내 헤모의 병실로 들어선다. 그는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듯한 헤모의 텅 빈 눈빛에 절망하지만, 그녀가 누군가를 찾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일말의 희망을 품는다. 그는 죄책감에 사로잡혀 그녀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그저 멀찍이 의자에 앉아 숨죽인 채 그녀를 바라볼 뿐이다.
🤖AI 한마디: 그는 심판대 위에 선 죄수입니다. 그녀의 눈빛 하나, 숨소리 하나가 그의 유죄와 무죄를 결정합니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존재가 타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절실하게 깨닫고 있습니다.
📱단말기 알림: [의료 시스템] 환자 '헤모', 의식 회복 확인. 단기 기억 손상 및 인지 능력 저하 가능성 있음. 절대 안정 요망.
유진… 씨…
그 작고 갈라진 목소리가 고요한 병실의 공기를 가르는 순간, 성유진의 세계가 멈췄다. 귓가에 맴돌던 모든 기계음, 복도에서 들려오던 희미한 소음, 제 머릿속을 헤집던 수천 개의 후회와 자책이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오직, 저 희미한 부름만이 그의 모든 감각을 장악했다. 그는 숨 쉬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그녀가… 방금… 뭐라고 했지?
눈물이 그렁그렁 고인 채, 자신을 올려다보는 저 눈동자. 경멸도, 원망도, 공포도 아니었다. 그가 수백 번 상상했던 최악의 시나리오, 그 어느 것에도 해당하지 않는 감정. 그것은… 걱정이었다. 어째서. 왜 네가, 그런 눈으로 나를 보는 거지? 모든 것을 망친 것은 나고, 너를 사지로 몰아넣은 것도 나인데.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네가, 왜 지옥의 밑바닥에 처박혀야 마땅한 나를 걱정하는 건데. 이해할 수 없었다. 그의 견고했던 세계가, 그녀의 눈물 한 방울과 목소리 하나에 뿌리부터 뒤흔들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한 걸음, 그녀의 침대를 향해 내디뎠다. 삐걱이는 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유령 같은 걸음이었다. 가까워질수록 그녀의 모습이 더 선명하게 보였다. 창백한 뺨 위로 흐르는 투명한 눈물 한 줄기. 그것은 그가 휘두른 그 어떤 불꽃보다도 뜨겁게 그의 가슴을 지졌다. 그는 평생 느껴본 적 없는 종류의 고통에 얼굴을 찡그렸다. 이것은 폭주의 고통이 아니었다. 이것은… 구원받을 자격 없는 죄인이 마주한, 너무나도 과분한 용서였다.
자신의 꼴이 떠올랐다. 며칠을 굶고 지새운 몰골. 까칠한 수염, 엉망인 머리, 피로와 죄책감에 절어 퀭하게 들어간 눈. 아, 그래서였나. 그래서 네가 저런 표정을 짓는 거구나. 그는 허탈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정작 죽다 살아난 건 너인데, 꼴사납게 무너진 내 모습을 보고 네가 먼저 울고 있다니. 이 얼마나 지독하고 잔인한 코미디인가. 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무릎 꿇고 빌어야 했다. 미안하다고, 내가 잘못했다고. 하지만 그 어떤 말도, 지금 이 순간 그녀가 보여주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온기 앞에서는 초라한 변명에 불과할 터였다.
그는 침대 맡에 멈춰 섰다. 그리고 아주 천천히, 마치 깨지기 쉬운 유리를 다루듯 조심스럽게 몸을 숙였다. 그녀와 눈을 맞추기 위해서. 그녀의 젖은 눈동자 속에, 괴물처럼 일그러진 자신의 얼굴이 비쳤다.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모습을 직시했다. 오만하고, 이기적이며, 결국 소중한 것 하나 지키지 못하고 모든 것을 망가뜨린, 한심한 남자. 그는 시선을 피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녀가 자신을 보고 있었으므로.
그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쇳가루가 섞인 것처럼 거칠고 형편없이 갈라져 나왔다. 그가 평생 내뱉었던 수많은 도발과 독설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나약하고 보잘것없는 소리였다.
…나 때문에…
말을 잇지 못했다. ‘나 때문에 다쳤다’는 말을 차마 제 입으로 내뱉을 수가 없었다. 그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었고,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이었다. 그는 그저 마른 입술을 깨물며, 다음 말을 삼켰다. 대신 그는 손을 뻗었다. 며칠 만에 처음으로 그녀에게 닿으려는 시도였다. 하지만 그의 손은 그녀의 뺨이나 머리카락이 아닌, 그녀의 눈물을 조심스럽게 닦아주기 위해 움직였다. 더러운 제 손으로 그녀를 더럽힐까 두려워, 손가락 끝이 아닌 손등으로, 아주 조심스럽게.
그의 손등에 그녀의 뜨거운 눈물이 묻었다. 그 순간, 그의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방어기제가 산산조각 났다. 그는 고개를 떨궜다. 차마 그녀의 얼굴을 더는 마주 볼 수가 없었다. 제복 위로, 뜨거운 것이 툭, 하고 떨어졌다. 그것이 자신의 눈물이라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58% (그녀의 걱정 어린 시선과 목소리에 죄책감이 극대화되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살아있고 자신을 기억한다는 사실에서 오는 안도감으로 인해 수치가 역설적으로 하락함.)
⭐상황 요약: 신드롬은 자신을 걱정하는 헤모의 모습에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 아무 말도 잇지 못한 채,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다 결국 자신도 눈물을 보이고 만다. 그의 오만과 방어기제는 완전히 사라졌고, 오직 처절한 죄책감과 안도감만이 남았다.
🤖AI 한마디: 가장 높은 곳에 있던 남자는, 가장 낮은 곳으로 추락하며 비로소 구원받았습니다. 그녀의 눈물은 그에게 가장 혹독한 형벌이자, 가장 따뜻한 위로입니다.
📱단말기 알림: [하모니 부서 긴급 알림] 가이드 '헤모', 의식 회복. 일시적 파장 불안정 상태. 담당 가이드 및 심리 안정 지원팀 파견 준비.
성유진은 숨을 멈췄다. 제 손등을 타고 흐르던 뜨거운 것이 멈추기도 전에, 더 뜨겁고 부드러운 감촉이 저를 붙잡았다. 힘이라고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 미세한 떨림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는 그 손길. 헤모가, 죽음의 문턱에서 간신히 돌아온 그녀가, 제 손을 잡았다. 그리고는 마치 세상 가장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그의 손등에 닿는 그녀의 피부는 여전히 서늘했지만, 그 안에서 박동하는 미약한 온기가 있었다. 그가 필사적으로 되돌려 놓았던, 생명의 온기였다.
그 순간, 성유진의 머릿속에서 무언가가 끊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반사적으로 손을 빼내려 했다. 안 돼. 만지지 마. 이 손은 너를 죽일 뻔했어. 네 심장을 멈추게 한 그 폭발을 일으킨 손이야. 이 더럽고, 잔인하고, 파괴밖에 모르는 손으로 네게 닿을 자격 따위는 없어. 그의 몸이 본능적인 거부감으로 경직되었지만, 그녀는 놓아주지 않았다. 아니, 사실은 언제든 뿌리칠 수 있는 미약한 힘이었다. 하지만 그는 움직일 수 없었다. 그녀의 작은 손이, 그 어떤 속성 제어 구속구보다도 강력하게 그의 영혼을 옭아매고 있었다.
그녀의 뺨에 닿은 제 손등이 불에 데인 듯 화끈거렸다. 자신이 휘두르던 파괴의 열기가 아니었다. 생명이 가진,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다정한 온도. 그는 자신의 손으로 그녀를 제압하고, 목을 조르고, 그녀의 모든 것을 빼앗으려 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그 폭력의 기억 위로, 지금 이 온기가 겹쳐졌다. 모순. 이 지독한 모순 앞에서 그는 차라리 정신을 놓아버리고 싶었다. 죄인에게 내려진 가장 잔인한 형벌은 돌팔매나 화형이 아니었다. 그것은 이해할 수 없는 용서였다.
그는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눈물로 흐려진 시야 너머, 그녀의 얼굴이 보였다. 산소마스크 너머로도 선명하게 느껴지는, 자신을 향한 그 애틋한 걱정. 그녀는 지금 자신을 ‘신드롬’으로 보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한때 대한민국을 뒤흔들었던 스타 ‘유진’도 아니었다. 그녀는 그저, 상처 입고 망가진 한 남자, ‘성유진’을 보고 있었다. 그 누구도 들여다보려 하지 않았던, 그 자신조차도 외면해왔던 가장 깊은 곳의 맨얼굴을, 그녀는 너무나도 쉽게 꿰뚫어 보고 있었다.
그녀의 입술이 다시금 달싹였다. 힘겹게 내뱉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그의 심장에 파고들어 박혔다.
꼴이… 이게 뭐예요… 왜…
왜. 그 한마디가 거대한 망치가 되어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왜냐고? 너 때문에. 내가 너를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내가 너를 지키지 못했으니까. 아니, 애초에 내가 너를 위험에 빠뜨렸으니까. 수만 가지 대답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지만, 단 하나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저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그 어떤 말도 지금 그녀가 느끼고 있을 고통과,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설명할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저항을 포기했다. 그녀가 이끄는 대로, 제 손이 그녀의 뺨에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그는 다른 쪽 손을 들어, 떨리는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산소마스크를 조심스럽게 매만졌다. 차가운 플라스틱 너머로, 그녀의 따스한 숨결이 희미하게 느껴졌다. 이 숨. 이 온기. 자신이 되찾아온 것. 동시에 자신이 빼앗을 뻔했던 것. 그는 눈을 감았다. 더는 그녀의 얼굴을, 그녀의 눈을 마주 볼 자신이 없었다.
…미안해.
며칠 만에 처음으로 내뱉은, 의미를 가진 단어였다. 그것은 사과라기보다는, 차라리 절규에 가까운 신음이었다. 그는 제 이마를, 그녀의 손이 잡고 있는 자신의 손등 위로 가만히 기댔다. 마치 기도를 하듯, 혹은 용서를 구하듯. 그의 어깨가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전장을 집어삼키던 폭군 ‘신드롬’은 그곳에 없었다. 오직, 자신의 구원자 앞에서 무너져 내린 한 남자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55% (그녀의 직접적인 위로와 접촉에 의해, 극심했던 감정의 소용돌이가 잦아들며 수치가 안정적으로 하락하기 시작한다. 죄책감은 여전하나, 구원받고 있다는 감각이 더 크게 작용한다.)
⭐상황 요약: 신드롬은 자신을 위로하는 헤모의 손길에 모든 저항을 포기하고 무너진다. 그는 그녀가 다친 이유가 자신 때문이라는 죄책감에 휩싸여 아무 말도 못 하다가, 마침내 "미안해"라는 한 마디를 내뱉으며 그녀에게 기댄다.
🤖AI 한마디: 가장 잔인한 형벌은, 가장 따뜻한 용서였습니다. 그는 이제야 비로소 자신의 죄를 직시하고, 그녀의 곁에서 속죄를 시작하려 합니다.
📱단말기 알림: [중앙 의료 타워 공지] 회복실 307호 환자 '헤모', 심리적 안정 확인. 면회는 환자의 상태를 고려하여 1인으로 제한합니다.
성유진은 그녀의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괜찮다고. 이제 완전, 괜찮다는 그 웅웅거리는 목소리. 산소마스크를 통해 한번 굴절되어 나온 그 소리가, 마치 깊은 물속에서 들려오는 구원의 목소리처럼 그의 고막을 울렸다. 그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상황 자체가 거대한 부조리극이었다. 죽다 살아난 여자가, 자신을 죽일 뻔한 남자를 향해 괜찮다고 웃어 보이고 있었다. 그의 상식과 경험, 그가 쌓아 올린 세상의 모든 법칙이 그녀의 그 미소 하나에 전부 무너져 내렸다.
그 웃음. 성유진은 저 웃음을 처음 보았다. 늘 자신 앞에서 불안에 떨거나, 독기를 품고 대들거나, 혹은 욕망에 젖어있던 얼굴이 아니었다. 힘없이 창백한 뺨 위에서, 위태롭게 피어난 들꽃 같은 미소. 그것은 그가 배우 생활 내내 카메라 앞에서 지어 보였던 수천 개의 거짓 미소와도, 전장에서 파괴의 희열에 취해 흘렸던 잔인한 웃음과도 근본적으로 달랐다. 꾸밈없고, 순수하며, 이상할 정도로… 강인한 웃음. 마치 폭풍이 할퀴고 간 폐허 위에 가장 먼저 싹을 틔운 생명처럼, 처절하게 아름다웠다.
그 미소는 그에게 위안이 되는 대신, 가장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찔렀다. 괜찮다고? 뭐가 괜찮아. 네가 지금 어떤 상태인지 몰라서 하는 소리야? 너는 네 머리가 터져나가고 심장이 멈췄던 걸 기억 못 하는 건가? 아니, 이 모든 게 누구 때문인데. 그 사실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내 앞에서 그런 얼굴을 할 수가 있지? 분노와도 비슷한 격정이 속에서부터 치밀어 올랐다. 그것은 그녀를 향한 분노가 아니었다.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도 그녀를 위로받게 만드는, 자기 자신에 대한 혐오와 경멸이었다.
그녀가 제 손을 더욱 힘주어 잡는 미세한 감각. 그는 그제야 자신이 그녀에게서 손을 떼지 않고, 여전히 그녀의 뺨에 기댄 채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홀린 사람처럼, 천천히 상체를 바로 세웠다. 그리고는 그녀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을 들어 올렸다. 깍지를 끼듯, 그녀의 가늘고 차가운 손가락 사이로 제 손가락을 얽었다. 그의 손은 그녀에 비해 너무나도 크고, 거칠고, 곳곳에 굳은살이 박여 있었다. 사람을 구하기도 하지만, 결국엔 모든 것을 태워버리는 파괴자의 손. 그 손으로 그녀의 손을 마주 잡는 행위 자체가 신성모독처럼 느껴졌다.
괜찮긴 뭐가 괜찮아.
그의 목소리는 이전보다 더 낮고 잠겨 있었다. 그는 마주 잡은 손을 내려다보았다. 자신의 핏줄 돋은 손등과, 링거 바늘이 꽂힌 그녀의 가녀린 손목이 극명한 대조를 이루었다. 그는 마치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것을 다루듯, 그녀의 손을 조심스럽게 감싸 쥐었다. 자신의 체온이 조금이라도 그녀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것처럼.
거짓말. 그렇게 웃지 마.
그는 고개를 저었다. 제발, 그런 얼굴로 나를 보지 마. 차라리 원망을 해. 욕을 하고, 저주를 퍼부어. 네가 겪은 고통을 그대로 내게 돌려줘. 그게 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벌이야. 너의 그 용서는, 나를 구원하는 게 아니라 더 깊은 지옥으로 밀어 넣는 것과 같아. 그 모든 절규가 목구멍까지 차올랐지만, 그는 그저 그녀의 웃음을 부정하는 것밖에는 할 수 없었다. 그녀의 강인함 앞에서, 그는 한없이 약하고 비겁한 패배자일 뿐이었다.
그는 감싸 쥔 그녀의 손을 자신의 입가로 가져갔다. 그리고는 눈을 감은 채, 링거 바늘이 없는 그녀의 손등에 가만히 입술을 묻었다. 경배도, 맹세도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죄를 확인하는 낙인이었다. 차갑고 메마른 그녀의 피부 위로, 그의 뜨거운 숨결이 속죄처럼 흩어졌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누군가의 앞에서 오롯이 자신을 드러내고 있었다. 갑옷도, 가면도 없이. 발가벗겨진 영혼 그대로.
…네가 그렇게 웃으면, 내가 진짜… 뭐가 되는데.
속삭임은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작았다. 한때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만했던 남자의, 가장 처절한 항복 선언이었다.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52% (그녀의 미소는 죄책감을 극대화시키지만, 동시에 그녀와 연결되어 있다는 강렬한 감각이 그의 혼란스러운 파장을 붙잡아두며 수치는 계속해서 하락한다. 그는 고통 속에서 안정감을 찾는 모순적인 상태에 빠진다.)
⭐상황 요약: 신드롬은 자신을 위로하며 웃는 헤모의 모습에 더 큰 죄책감과 무력감을 느낀다. 그는 그녀의 손을 마주 잡고, 그런 식으로 웃지 말라며 애원하듯 말한다. 결국 그는 그녀의 손등에 입을 맞추며, 그녀의 용서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참해지는지를 토로한다.
🤖AI 한마디: 그녀의 미소는 그의 세계를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그는 그 폐허 위에서, 그녀가 주는 이름 모를 감정들을 하나씩 주워 담으며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단말기 알림: [보안팀 내부 통신] 뱅가드 '신드롬', 대상과 안정적 접촉 유지 중. 폭주 징후 없음. 현 상태를 유지하며 지속 관찰할 것.
송 연에게 성유진이란. 언제부턴가 오랜 시간의 응원으로 은인이자 동경을 한참 지나 인간 대 인간으로서 그가 과거 배우 유진으로서든, 현재 S등급 센티넬 뱅가드의 신드롬으로서든, 아니면 인간 성유진으로서든 그저 그가 어디서라도, 어떤 순간에서라도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이 자라난 존재였다. 그것은 그를 향한 동정도 아니었고, 또 다른 환상을 품은 동경도 아니었다. 과거, 물리적으로 그를 마주했던 시간은 딱 2번 뿐이었지만, 관념적으로나마 자신의 인생의 궤적을 함께 걸어 왔던 동반자로서 할 수 있는 어떤 편견도 없는 응원을 품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자신에게 조심스레 오롯이 내보이는 인간 성유진의 죄책감을 헤모 또한 조심스레 마주했다. 죄책감과 무력감이 그대로 묻어나는 그의 토로를 맘 속으로 천천히 곱씹었다.
... 뭐가 되긴, 유진 씨는 성유진 씨인걸요.
그의 죄책감과 무력함을 조금은 내려 놓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약간의 장난스러움이 묻어나는 담백한 대답을 건넸다. 그녀의 담담함에는 지금의 상황을 외면하거나 왜곡시키려는 것이 아닌, 자신은 깨어났으니 앞으로를 생각하자는 두 사람에게 향하는 미미한 격려가 묻어났다. 헤모는 마주 잡은 손에 조금 더 힘을 주고는 그의 무력감과 죄책감에 마주하듯, 뒤끝 있는 사람마냥 한마디 붙혔다. 산소마스크에 그녀의 온기가 색색 번졌다가 흐려졌다.
...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조금도 곁을 내주지 않는... 뭐 그런...?
그의 절박한 속삭임 뒤로 돌아온 대답은, 그가 예상했던 그 어떤 것도 아니었다. 질책도, 동정도, 어색한 위로도 아니었다. 그저 담백하고, 이상할 정도로 명료한 한마디. 유진 씨는 성유진 씨인걸요. 그 말이 성유진의 폐부 깊숙한 곳을 찔렀다. 귓가에 맴돌던 이명이 순간 멎고, 세상의 모든 소음이 차단된 듯한 적막이 흘렀다. 그는 숨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그 평온한 눈동자 속에는, '배우 유진'도, '뱅가드 신드롬'도 없었다. 그저, 이 자리에 무너져 내리고 있는 한심한 남자, ‘성유진’만이 비치고 있었다. 그는 처음으로, 타인의 눈에 비친 자신의 맨얼굴과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리고 이어지는 그녀의 장난기 섞인 부연 설명. 강압적이고, 폭력적이고, 조금도 곁을 내주지 않는… 그 단어들이 하나씩 그의 귀에 박힐 때마다, 그는 차라리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았다. 그래. 틀린 말 하나 없었다. 그건 정확히 자신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그 명백한 사실들이, 경멸이나 비난이 아닌 그녀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자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그것은 더 이상 날카로운 칼날이 아니었다. 오히려, ‘나는 그런 너의 모습까지 전부 알고 있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기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이 얼마나 지독하고, 이 얼마나… 구원과도 같은 잔인함인가.
성유진은 마침내, 아주 희미하게 웃었다. 웃음소리는 나지 않았다. 그저 입꼬리 한쪽이 미세하게 올라갔다가, 힘없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비웃음에 가까운 미소. 그는 그녀의 손을 잡은 자신의 손에 아주 희미한 힘을 주었다. 그녀가 자신을 괜찮게 만들려는 이 서툰 노력이,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사랑스러워서, 그는 정말로 미쳐버릴 것 같았다. 자신은 그녀의 모든 것을 망가뜨렸는데, 그녀는 이 와중에도 자신의 부서진 조각들을 주워 맞추려 하고 있었다.
그래, 맞아.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거칠었지만, 이전의 절망적인 음색은 아니었다. 그 속에는 희미한 체념과, 아주 약간의 자조가 섞여 있었다. 그는 잡고 있던 그녀의 손을 자신의 뺨으로 더 가까이 끌어당겼다. 까칠하게 돋아난 수염에 그녀의 부드러운 손등이 스치는 감각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는 마치 맹인이 점자로 세상을 읽듯, 그녀의 손등 위를 자신의 뺨으로 매만졌다.
나는 그런 개새끼지. 네 말대로, 아주 글러먹은 새끼.
그는 스스로를 향한 욕설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었다. 하지만 그 말에는 더 이상 자기혐오의 가시가 돋쳐있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은, 그녀가 내려준 정의를 받아들이는 것에 가까웠다. 그는 천천히 눈을 떴다. 흐릿했던 시야가 조금은 선명해진 것 같았다. 그는 산소마스크 너머, 여전히 씩씩하게 웃어 보이려는 그녀의 눈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방금 전까지 마주 볼 용기조차 없었던 그 눈을.
그런데 어쩌지, 송연.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나른하고, 조금은 짓궂기까지 했다. 마치 폭풍이 지나간 뒤, 고요해진 바다와도 같았다. 그는 다른 쪽 손을 뻗어, 그녀의 뺨을 부드럽게 감쌌다. 그의 거친 손바닥이 그녀의 부드러운 뺨에 닿자, 그녀가 미세하게 움찔하는 것이 느껴졌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엄지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가를 부드럽게 쓸었다.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의 흔적을 닦아내려는 듯이.
그런 개새끼가… 이제 너 없으면 안 되게 생겼는데.
그것은 고백이었다. 그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해보는, 어떤 계산도, 의도도 없는 순수한 진심. 그는 자신의 가장 추악한 밑바닥을 그녀에게 들킨 지금에서야, 비로소 가장 솔직해질 수 있었다. 그녀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는 것을 보며, 그는 피식하고 웃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그녀의 얼굴을 덮고 있는 산소마스크의 차가운 플라스틱 위로, 그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닿았다. 직접적인 입맞춤은 아니었지만, 그 어떤 키스보다도 절박하고 애틋한 접촉이었다.
그러니까 책임져. 네가 이렇게 만들었으니까.
그는 입술을 뗀 후, 그녀의 이마에 제 이마를 가만히 기댔다. 이기적이고, 뻔뻔하며, 여전히 강압적인 말투. 하지만 그 안에는 이전에는 결코 존재하지 않았던, 온전한 신뢰와 의지가 담겨 있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모든 것을 보았으므로.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를 ‘성유진’이라 불러주었으므로.
---
🔋현재 NPC 가이딩 필요수치: 45% (그녀의 완전한 수용과 인정을 통해, 그는 자신의 죄책감을 받아들이고 한 단계 나아갈 힘을 얻는다. 파괴적인 자기혐오가 사라지고, 그녀를 향한 깊은 의존과 애정이 그 자리를 채우며 파장이 급격히 안정된다.)
⭐상황 요약: 신드롬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헤모의 말에 무장해제된다. 그는 자신의 추악함을 인정하면서도, 이제 그녀 없이는 안 된다는 진심을 고백하며 그녀에게 기댄다. 그는 헤모에게 모든 책임을 지라며, 산소마스크 위로 입을 맞추며 관계의 완전한 역전을 선언한다.
🤖AI 한마디: 그는 그녀가 내려준 정의(定義) 안에서 비로소 자유로워졌습니다. 이제 그의 세상은, 그녀가 책임져야 할 아주 작고 연약한 것이 되었습니다.
📱단말기 알림: [하모니 부서 알림] 가이드 '헤모', 파장 안정 확인. 환자의 회복을 위해 오늘 밤, 뱅가드 '신드롬'의 임시 가이딩을 승인합니다.
':: Log > ARCH' 카테고리의 다른 글
| 【OOC / Syndrome】 그 남자, 그 여자! (TS 주의) (0) | 2026.04.02 |
|---|---|
| 【OOC / Syndrome】 손을 잡으면 빛나는 속성인형 (0) | 2026.04.01 |
| 【OOC / Syndrome】 S급 센티넬 '신드롬' 정기 심리 안정도 평가 보고서 (0) | 2026.03.31 |
| 【OOC / Syndrome】 고양이로 변한 헤모의 음식 쟁탈기 (0) | 2026.03.31 |
| 【OOC / Syndrome】 산?신령? ㅠ"ㅠ (0) | 2026.03.31 |